국민연금 '더 늦게 수급' 논의…정년연장·계속고용도 추진
고령화 심화로 재정 악화 우려…노인들 "70.5세 이상이 노인"
한국 OECD 중 노인빈곤률 최악…"'행복한 삶' 차원 접근을"


일부 지자체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높이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만 65세'인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때마침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가입 연령과 수급개시 연령을 늦추자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정년연장과 정년 후 계속 고용을 추진하고 있어 관련 논의는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노인이 되는 나이를 늦춰 고령화로 인해 악화한 재정 상황을 극복할 지렛대로 쓰자는 것이다.

다만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보 없이 섣불리 노인 기준 연령을 늦추면 안그래도 세계 최악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높여 노년의 삶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불붙은 노인연령 상향…무임승차 논란부터 연금·정년 논의까지
◇ 지자체발 '무임승차' 문제제기…연금개혁·정년연장과도 맞물려

노인 기준 연령을 늦추자는 주장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관련 법률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노인의 기준 연령은 오랫동안 '만 65세'로 굳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 등으로 노인의 건강 상태가 과거에 비해 좋아지고 있는 데다, '현역'에서 일하는 노인이 전보다 늘면서 더 늦은 나이부터 노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이런 논의에 불을 댕긴 것은 대구시와 서울시다.

대구시가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뒤 서울시도 연령 기준 개편에 나설 뜻을 밝히며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인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65세 이상의 자에게 수송시설·고궁·박물관·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이용요금을 할인해서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 한창 추진 중인 국민연금 개혁에서도 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노인이 몇 살부터인지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는 만 59세까지 의무 가입해 만 63세에 수급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수급 개시 연령은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5년마다 1살씩 늦춰지게 설계돼 있다.

의무 가입 연령과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지면 그만큼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된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민간자문위원회 논의과정에서는 수급 개시 연령을 67세까지로 더 늦추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더 늦게까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즉, 더 늦게까지 연금을 내고) 더 늦게 수급을 시작하게 되면 퇴직 후 연금을 받기까지 '소득 절벽'이 더 심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지금도 만 60세 정년 후 연금을 타는 63세까지 3년이 국민연금 급여를 타지 못하는 기간이어서 퇴직자가 급격한 소득 하락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런 식의 연금 개혁 논의는 정년 연장 논의와 맞물려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정부는 작년 6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도 정년 연장과 계속 고용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올해 연초 업무보고에서 밝혔었다.

불붙은 노인연령 상향…무임승차 논란부터 연금·정년 논의까지
◇ '노인 기준 연령' 법률마다 제각각…해외 사례는


노인 기준 연령은 관련 법률마다 다양하다.

지하철 무임승차로 이번 논란이 촉발됐지만, 노인에게 보장해야 할 혜택의 목적과 특징이 그만큼 다르다는 의미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1년 11월 내놓은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김은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65세 이하 노인성 질환자 포함), 경로우대제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사회보장제도는 대부분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주택연금의 경우 만 55세 이상을, 농지연금(노후생활안정자금)은 만 60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한다.

정년은 만 60세이지만, 육체노동의 가동 연한을 만 65세까지로 본 대법원 판례도 있다.

고용 정책에서 고령자는 '만 55세 이상'을 뜻한다.

반면 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만 70.5세다.

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20년)에서 응답한 노인 중 52.7%는 '만 70~74세'를, 14.9%는 '만 75~79세'를 노인 기준 연령으로 봤다.

'80세 이상'이라는 생각도 6.5%나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출생아의 기대 수명은 83.6년으로 1970년 62.3년보다 21.3년이나 늘었다.

다만 이런 인식은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 것으로, 각종 사회보장 혜택이나 국민연금 급여 등을 이 나이부터 받아야한다는 데 동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은 노령·유족·장애인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이 66세이며 정년은 폐지된 상태다.

일본은 국민연금과 후생연금의 수급 개시연령이 65세다.

법적 정년이 65세로 늦춰졌고, 기업에는 만 70세까지 계속고용 의무가 부여된다.

독일은 법정연금보험 등 공적연금의 수급 개시연령과 정년 모두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늦춰진다.
불붙은 노인연령 상향…무임승차 논란부터 연금·정년 논의까지
◇ 비정규직·임시직 내몰리는 노인들…"노년 행복한 삶에 초점 맞춰야"

입법조사처의 보고서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이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단지 복지 재정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한 노인들의 행복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노인 인구 중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의 비율)은 2020년 38.97%로 OECD 평균 13.5%(2019년 기준)보다 2.9배나 높다.

OECD '2021 한눈에 보는 연금'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노인들 사이에서의 빈부 격차도 커서, 65세 이상의 지니계수는 한국(2018년 기준)이 코스타리카와 칠레 다음으로 높다.

근로소득이 노인 소득의 52.0%나 차지했는데, 이런 비중이 50% 이상인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 외에는 멕시코(57.9%)뿐이었다.

'2020 KIDI 은퇴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취업자 중 60대의 67.5%, 70대의 88%, 80세 이상의 97.4%가 상대적으로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은 일용직과 임시직 등 비정규직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제 논리로만 따져봐도 노인에게 승차료를 받지 않아 드는 비용보다 무임승차로 인해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교통시스템공학) 교수가 지난 2014년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 인원에게 요금을 물려 늘어나는 수입이 한해 1천33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자살과 우울증 예방, 의료비 절감, 관광산업 활성화 등으로 2천270억원의 사회경제적 편익이 발생해 2배 가까이 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