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트라우마'에 묶인 외환시장 족쇄 푼다…해외 금융기관 국내 진출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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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간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외환시장을 대폭 개방한다. 해외에 있는 금융기관의 국내 시장 진출을 허용하고, 외환 거래 시간도 런던 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새벽 2시까지 연장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원화 접근성을 높여 국내 주식·채권 등 원화표시 자산의 매력을 높이는 한편, 투기판이 된 역외 차액선물결제환(NDF)시장 내 원화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흡수해 외환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 외환시장에 대한 해외 금융기관들의 접근성을 확대해 시장의 규모와 참여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환율 안정성과 원화 표시 자산의 매력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게 정부의 목표다. 현재 한국은 역외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현물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 소재한 외국 금융기관이 '외환도매시장'격인 국내 은행 간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거래시간도 국내 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한국시간 9시~15시30분으로 짧았다. 오랜 기간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다보니 원화를 매개로 한 국내 외환 시장은 한국 경제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정체해왔다. 1997년 18억3000만달러였던 국내 은행 간 시장 내 현물환 일거래량은 2008년 78억1000만달러로 성장했다. 하지만 2022년엔 90억4000만달러로 14년 간 15% 성장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의 연간 무역 규모가 65%, 주식시장 거래량이 109% 증가한 것과는 대비되는 수준이다.
국내 외환시장 성장이 정체된 사이 역외 NDF시장은 현물환 가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졌다. 2022년 기준 원화 NDF시장 규모는 498억달러로 국내 현물환 시장(351억달러)를 압도한다. NDF는 일정 시점에 외환을 일정 환율로 매매할 것을 약속한 선물환의 일종이다. 역외 시장에선 계약한 환율과 만기일의 현물 환율 간 차액만을 달러로 결제해 실질적으로 원화가 오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물 시장을 압도할 정도로 커진 NDF시장에서의 투기성 거래가 환율을 좌지우지하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가 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국내 외환거래 마감 시간은 현 15시30분에서 런던 마감 시간인 2시까지 연장하고, 단계적으로 24시간으로 늘린다. 다만 외환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역외시장에서의 현물환 거래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RFI의 은행간 거래 시 국내 외국환중개회사를 경유하도록 의무화해 당국의 거래 모니터링, 시장관리 기능은 유지할 방침이다.
김 관리관은 "NDF시장에서 헷지펀드 등 투기세력을 제외한 글로벌 은행, 증권사 등 대형 기관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흡수해 국내 외환시장을 ‘넓고 깊게’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목적의 기관이 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과거 선박수주 호황기에 조선사, 최근 해외 투자를 확대 중인 개인과 기관 등 한 방향의 거래유인을 가진 일부 수급주체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거주자(해외금융기관)의 본인명의의 계좌가 없는 은행과의 외환매매(제3자 외환거래)도 허용된다. 54개로 제한된 국내 외환 시장 내 '플레이어'가 늘어날 뿐 아니라 애그리게이터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고객의 호가를 맞추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국내기관들의 외환 비즈니스 사업 기회가 늘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개장 시간 연장되면서 런던 등에서도 영업 시간 내 원화 현물환 투자가 가능해졌다. 원화에 강점 지닌 국내 기관의 현지 비즈니스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 본점-지점 간엔 국내 인가 외국환중개사를 통하지 않아도 원화 직거래를 허용하고, 원화차입 신고의무도 면제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 은행의 국내 진출 유인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올해 3분기에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 초에 시범 운영한다. 김 관리관은 "우리 외환시장 접근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제고해나갈 것"이라며 "국내 외환시장을 개방·경쟁적 시장구조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거래시간 새벽 2시 런던마감시까지 연장
기획재정부는 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5월 국정과제로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접근성 확대를 골자로 한 '외환시장 선진화'를 제시한지 8개월여만에 구체적 청사진이 나왔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우리 외환시장은 외환위기 트라우마로 수십년간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 즉 낡고 좁은 도로체제를 유지해왔다"며 "좁은 도로로는 그간 비약적으로 확대된 자본 이동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좁은 도로 때문에 안정성이 위협 받을 수 있어 이번 정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한국 외환시장에 대한 해외 금융기관들의 접근성을 확대해 시장의 규모와 참여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환율 안정성과 원화 표시 자산의 매력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게 정부의 목표다. 현재 한국은 역외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현물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 소재한 외국 금융기관이 '외환도매시장'격인 국내 은행 간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거래시간도 국내 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한국시간 9시~15시30분으로 짧았다. 오랜 기간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다보니 원화를 매개로 한 국내 외환 시장은 한국 경제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정체해왔다. 1997년 18억3000만달러였던 국내 은행 간 시장 내 현물환 일거래량은 2008년 78억1000만달러로 성장했다. 하지만 2022년엔 90억4000만달러로 14년 간 15% 성장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의 연간 무역 규모가 65%, 주식시장 거래량이 109% 증가한 것과는 대비되는 수준이다.
국내 외환시장 성장이 정체된 사이 역외 NDF시장은 현물환 가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졌다. 2022년 기준 원화 NDF시장 규모는 498억달러로 국내 현물환 시장(351억달러)를 압도한다. NDF는 일정 시점에 외환을 일정 환율로 매매할 것을 약속한 선물환의 일종이다. 역외 시장에선 계약한 환율과 만기일의 현물 환율 간 차액만을 달러로 결제해 실질적으로 원화가 오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물 시장을 압도할 정도로 커진 NDF시장에서의 투기성 거래가 환율을 좌지우지하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가 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투기 뺀 NDF 거래수요 한국시장으로 흡수"
당국은 개선안의 핵심을 폐쇄적 외환시장의 개방에 뒀다. 먼저 일정 요건을 갖춰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RFI)의 국내 은행간 시장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RFI에 대해선 현물환 뿐 아니라 원화와 달러화 간 대차가 이뤄지는 FX스왑 시장도 개방할 계획이다. 인가 대상은 현재 은행간 시장에 참여 가능한 외국환업무취급기관과 동일한 글로벌 은행이나 증권사 등으로 제한된다. 투기성 매매 성격이 짙은 해외 헤지펀드의 국내 시장 진출은 제한한다는 의미다.국내 외환거래 마감 시간은 현 15시30분에서 런던 마감 시간인 2시까지 연장하고, 단계적으로 24시간으로 늘린다. 다만 외환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역외시장에서의 현물환 거래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RFI의 은행간 거래 시 국내 외국환중개회사를 경유하도록 의무화해 당국의 거래 모니터링, 시장관리 기능은 유지할 방침이다.
김 관리관은 "NDF시장에서 헷지펀드 등 투기세력을 제외한 글로벌 은행, 증권사 등 대형 기관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흡수해 국내 외환시장을 ‘넓고 깊게’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목적의 기관이 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과거 선박수주 호황기에 조선사, 최근 해외 투자를 확대 중인 개인과 기관 등 한 방향의 거래유인을 가진 일부 수급주체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외환시장 무한경쟁 돌입..."韓은행엔 기회"
정부의 이번 조치로 국내 외환 관련 시장은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할 전망이다. RFI들은 국내 금융기관과 동일한 전자거래 환경을 제공 받는다. 정부는 외국환거래법 및 시행령 등 규정을 개정해 외환거래가 필요한 고객(기업)이 복수의 은행으로부터 호가를 받아 그 중 최적 가격을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인 외국환 전자중개업무(애그리게이터)도 도입할 계획이다.비거주자(해외금융기관)의 본인명의의 계좌가 없는 은행과의 외환매매(제3자 외환거래)도 허용된다. 54개로 제한된 국내 외환 시장 내 '플레이어'가 늘어날 뿐 아니라 애그리게이터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고객의 호가를 맞추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국내기관들의 외환 비즈니스 사업 기회가 늘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개장 시간 연장되면서 런던 등에서도 영업 시간 내 원화 현물환 투자가 가능해졌다. 원화에 강점 지닌 국내 기관의 현지 비즈니스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 본점-지점 간엔 국내 인가 외국환중개사를 통하지 않아도 원화 직거래를 허용하고, 원화차입 신고의무도 면제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 은행의 국내 진출 유인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올해 3분기에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 초에 시범 운영한다. 김 관리관은 "우리 외환시장 접근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제고해나갈 것"이라며 "국내 외환시장을 개방·경쟁적 시장구조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