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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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민의힘 당 대표 여론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연령을 물을 때 60대라고 하면 인원이 찼다고 끊는답니다. 20대라고 해야 진행이 되니 전화를 꼭 받아주세요."

8일 영남지역의 한 국민의힘 지지자 모임은 이같은 긴급 문자를 돌렸다. 본인이 60대라도 20대로 응답하고 ARS 여론조사에 참여해야 지지하는 당 대표 후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모든 여론조사는 특정 세대나 지역의 쏠림 현상을 피하기 위해 골고루 분산한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에서 미리 설정한 세대나 지역별 참여자 수가 모두 찼다면 이후 참여자에 대해서는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다.

60대 참여자가 마감됐다면 이후 여론조사 기관의 전화를 받은 60대 참여자는 지지후보를 묻지도 않고 전화가 끊어지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장년 지지자가 많은 국민의힘에서는 이같은 일이 더 빈발하게 발생한다.

실제로 양강 구도가 본격화된 지난달 중순부터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연령 속이기' 움직임이 있었다. 한 당 관계자는 "모 캠프에 있는 60대 당원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때마다 20대라고 답한다고 들었다"며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는 다른 선거 이상으로 여론조사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단순히 특정 후보에 힘을 싣는 것을 넘어 선거 구도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1월초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대통령실부터 당내 친윤에게 본격적인 견제를 받았다. 이에 따라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더니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1위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도 지난주부터 대통령실 등의 집중 견제가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안 후보 역시 경선 레이스를 중도에 접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론조사 대상이 국민의힘 지지자에 한정되는만큼 모수가 많지 않아 한명 한명이 갖는 힘도 커진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대상은 300여명에 그치며 많아도 500명 수준이다.

이렇다보니 같은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후보간 격차가 크다. 8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김기현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15%포인트 앞섰지만,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김 후보를 4%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여의도에서 활동해온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개별 여론조사가 과학적으로 설계된만큼 모수가 적다고 해서 신뢰도가 크게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절대적인 수치보다 기존 조사와 비교해 추세를 살피면 판세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