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망한다더니 양의지에 152억 '현질'…당신이 모르는 두산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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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로봇·SMR·반도체
사업 명가 꿈꾸는 두산
사업 명가 꿈꾸는 두산
▶안재광 기자
야구에 진심인 두산이 요즘 '현질'을 하고 있어요. 한국 프로야구 최고 포수 양의지를 데려오는데 152억원을 질렀습니다. SSG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김광현을 영입할 때 151억을 썼는데, 이거보다 금액이 더 커요. 양의지는 NC에서 '집행검'을 획득했는데, 두산에선 어떤 아이템을 획득할지 궁금합니다. 두산은 또 이승엽 감독을 선임하면서 18억원을 안겨 줬죠. 그런데, 두산이 이렇게 돈 많이 써도 되나. 자기 돈이니까 뭐라 할 건 없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룹이 망할 것 같다면서 야구단을 파네 안 파네 했던 회사가 맞나 싶습니다. 야구에만 돈을 쓴 게 아니라 기업 쇼핑도 하고 있죠. 반도체 후공정 업체 테스나를 4600억원에 샀습니다. 살림 거덜 내고 살림 다시 차리는 느낌인데요. 이번 주제는, 야구 명가, 아니 사업 명가 꿈꾸는 두산입니다. 먼저 두산이란 회사를 알아보고 갈게요. 한국에 100년 넘은 회사가 딱 열 곳밖에 없는데, 두산이 그중 하나에요.구한말인 1896년 시작했으니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시대였어요. 김태리가 카스텔라 먹고, 이병헌이 가베 마시던. 한 기업이 100년을 넘기는 건 특히 한국처럼 산업화가 늦은 나라에서 넘긴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보통 10년, 20년 생존도 쉽지 않거든요. 대우, 한보, 국제, 해태, STX 등등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그사이에 사라졌죠. 사람과 다르게 기업은 평균 수명이 점점 짧아져서 2027년에는 12년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근데 두산은 127년을 버텼어요. 어떻게 '존버' 했는지는 뒤에서 다시 설명할게요. 어쨌든 처음 시작할 땐 어디든 그렇지만 대단하진 않죠. 포목상을 했대요. 장사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이후인 1952년 맥주 사업을 하면서 번듯한 회사가 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OB맥주 이게 두산을 대기업으로 이끈 사업이었어요. 두산베어스도 과거에는 OB 베어스였죠. 원래 한국에서 맥주는 귀한 술이었는데 해방 이후에 OB 맥주, 이땐 동양맥주였는데, 맥주를 대량생산 하니까 빠르게 대중화됩니다. 맥주로 돈 벌어서 두산은 주로 먹고, 마시고, 입는 소비재 사업을 확대합니다. 특히 해외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와 성공했어요. 코카콜라, KFC, 버거킹, 폴로 랄프로렌 이런 브랜드를 들여온 게 두산이었죠. 잘 될 브랜드 보는 눈만 있어도 우리는 대기업 할 수 있어요. 아빠만 회장님이면. 그런데 우리가 아는 두산은 지금 이런 사업 안 하잖아요. 이 사업 전부 정리해야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두산그룹에 두산전자란 자회사가 있었는데, 유독물질인 페놀 원액을 사고로 낙동강에 유출해요.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환경 사고 중 최악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어요. 이 사고 책임을 지고 박용곤 당시 두산 회장이 물러납니다. 그런데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죠. 두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두산이 도저히 사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릅니다. 더구나 두산은 맥주, 소주, 콜라 같은 물장사를 주력으로 했는데, 상수원에 페놀을 흘려보냈으니. 조선 땅에서 물장사를 하도록 사람들이 내버려 뒀겠어요. 회사가 거의 없어질 뻔합니다. 하지만 오래된 회사라 내공이 다르죠. 구한말, 일제 강점기, 6.25를 다 견뎠는데 쉽게 죽지 않아요.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두산으로 사업 구조가 완전히 바뀝니다. 그룹의 모태가 된 OB맥주까지 팔아요. 사실 소비재 사업을 전부 팔죠. 이후에 중공업 위주로 탈바꿈합니다. 일반 소비자 아니고, 기업을 상대로 물건 파는 B2B로 바꾼 겁니다. 이 과정은 물론,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어요. 호프집 하다 때려치우고 공장 들어가서 쇠 깎고 망치질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러지 말자, 그냥 하든가 하자 형제간 싸움이 나서 의절하고, 난리가 납니다. 아무튼, 2000년대 들어 두산은 한국중공업, 지금의 두산에너빌리티죠. 발음도 어려운. 여길 시작으로 대우종합기계, 고려산업개발 등등. 중후장대라고 불리는 덩치 큰 산업에 진출합니다. 그런데, 안 하던 거 해서 그런지. 얼마 안 돼 또 위기가 발생하죠. 두산이 엄청 사고 싶어 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미국 건설기계 회사 밥캣이었어요. 고양이처럼 생긴 로고가 유명하죠. 업계에선 먹어주는 꽤 괜찮은 회사인 것은 맞아요. 근데 두 가지가 문제였어요. 비싼 가격하고 시점. 인수가가 6조원. 2007년에 밥캣을 샀는데 그때까지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M&A 한 것 중에 가장 규모가 컸어요. 두산이 호구처럼 비싸게 샀다는 말이 나왔어요. 근데, 비싸게 사도 회사만 잘 되면 상관이 없는데. 하필이면 사고 나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집니다. 이때 건설경기가 어땠냐면, 딱 지금 같았어요. 아파트 지으면 미분양 나고, 집 사면 바보 되는 분위기. 근데 건설장비가 잘 됐겠어요. 포클레인, 지게차 이런 게 안 팔려서 창고에 쌓입니다. 돈 빌려서 밥캣 샀는데 장사가 안되니까 빌린 돈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았어요. 근데 여기서 또 두산건설 삽질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허허벌판에 말도 안 되게 큰 아파트를 지어요. 더 제니스. 지금 봐도 엄청난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논밭에 그냥 딱 이 건물만 보였어요. 63빌딩 높이의 아파트 8개 동을 지어요. 이게 거의 안 팔려서 조 단위 손실이 납니다. 여기에 면세점 한다고 했다가 돈 까먹고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한다고 해서 타격받고. 이래저래 손실과 실패가 겹쳐서 항복하고 정부에 도와주세요, SOS를 치죠. 결국 2020년 산업은행이 도와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돈 되는 거 다 팔아라 해서 동대문에 있는 두산타워 건물부터 클럽모우 골프장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솔루스, 두산건설 등등 계열사까지 싹 다 정리합니다. 야구단 판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이건 끝까지 지키더라고요. 그럼 두산은 뭐 먹고사냐. 산업은행이 그랬죠. 살려는 드릴게. 두산이 끝까지 지킨 두 회사가 있는데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실 팔 수가 없죠. 이거 팔면 두산이 없어지는 거니까. 이 회사는 사업 분야가 굉장히 다양한데. 그중에서 원자력 발전 설비가 크게 주목받고 있어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전은 '에너지 빌런'으로 불렸어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 세계가 지켜본 뒤에 '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 때 원전을 대체할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했어요.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꼭 1년 전 이맘때 침공한 뒤 원전에 대한 대우가 달라집니다. 당장 에너지가 필요한데.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로 바꾸려니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석탄, 석유 다시 때자니 지구에 미안하고. 심지어 산유국인 사우디, 이란 이런 나라들도 원자력 발전소 짓겠다고 나섰어요. 에너지도 확보하고 핵도 확보하고. 다목적 포석 같아요. 얼마 전에 한국전력 사장님이 튀르키예, 예전의 터키에 날아가서 원전 사업을 논의하고 돌아왔는데요. 중동과 유럽 국가들이 한국형 원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서 대규모 수주가 나온다면 두산도 원전 설비 수주를 많이 받아낼 것 같습니다. 또 소형모듈원자로, SMR 수주도 나올 분위기에요. SMR은 기존 원자로 대비 크기는 100분의 1에 불과한데 지진 나도 잘 버티고 출력도 세서 새로운 에너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수주가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두산이 단번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두산이 또 기대하는 게 발전소에 들어가는 가스터빈입니다. LNG, 액화천연가스를 태워서 발전하는 게 가스터빈인데요. 요즘은 가스만 연료로 쓰는 게 아니라 미래 에너지로 불리죠. 수소를 일부 넣거나, 아예 수소만 태우는 수소 터빈으로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수소를 태우면 물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요즘 수소를 주력 연료로 쓰자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거든요. 수소 터빈을 상용화할 수 있는 기업이 두산 이외에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 정도밖에 없어요. 이 중에서 두산이 개발 속도는 가장 빠릅니다. 사실 수소는 두산의 미래에요. 사람도 미래고, 수소도 미래고. 두산 계열사 중에 두산퓨얼셀이란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가 하는 게 수소연료전지 사업입니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면 전기와 열이 발생하는데 연료전지는 이 전기와 열을 활용하는 장치에요. 2021년 충남 대산산업단지에 세계 최초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지었어요. 또 이걸 중국에 수출했는데, 중국에선 이런 식의 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합니다. 수주가 나오겠죠. 두산퓨얼셀은 작년에 매출이 약 3000억원 정도 했고, 이익은 거의 안 났는데. 주식 시장에선 이 회사 가치를 2조원 넘게 평가하고 있어요. 재무제표만 보면 2조는커녕, 2000억도 과분한데요. 지금은 돈 잘 못 벌지만, 조만간 대박 날 거다 투자자들은 기대합니다. 정부는 수소 발전을 통해 발생한 전기를 매년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것을 검토 중인데, 이렇게 되면 수소 발전 시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수소연료전지는 트럭 같은 상업용 차량과 해양 선박에도 쓰일 수 있어서 잠재력이 전기차 못지않습니다. 여기에 두산에너빌리티는 기체 상태인 수소를 액체 상태로 바꿔서 운송과 보관을 효율적으로 하는 수소액화플랜트를 곧 지을 예정인데요. 국내에선 첫 사례라고 해요. 두산 계열사 중에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이라고 있어요. 이 이름 긴 회사가 수소 드론을 개발 중입니다. 배터리로 충전하는 드론은 기껏 20~30분 뜨는데, 수소 드론은 두 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어서 비싸도 사겠다는 곳이 꽤 있어요. 산불 감시나 군사용 정찰, 태양광 발전 모니터링. 이런데 쓸 수 있거든요. 수소는 적용 범위가 엄청 넓죠. 로봇도 두산이 진심인데요. 테슬라부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등 글로벌 대기업이라면 로봇 하나쯤은 하고 있죠. 두산도 꽤 합니다. 두산로보틱스가 하는 협동로봇,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은 요즘 사 갈 곳이 많습니다. 지금은 주로 수출하는데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 업체들이 이 로봇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물류센터나 공장에서 일 잘 안 하려고 하니까 기업들이 사람 대체할 로봇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수소, 로봇 같은 사업은 아직 엄청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시장이 열리기만 하면 반도체, 배터리 못지않게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돈 버는 사업은 대부분 팔아버린 두산 입장에선 이런 사업을 잘 키워야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사업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한데요, 두산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밥캣. 여기가 돈줄입니다. 지금 두산에서 가장 돈 잘 버는 회사가 밥캣인데요. 작년 영업이익이 1조원에 달했습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의 국회 통과 이후 도로, 통신 같은 인프라 투자를 엄청나게 늘리고 있어요. 또 리쇼어링이라고 하죠. 반도체, 배터리 같은 전략 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서 엄청난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 한국의 4대 기업들도 일제히 미국에 공장을 짓는 중이에요. 이런 인프라 투자가 늘면 건설 장비가 엄청 필요 할 겁니다. 밥캣은 한때 돈 먹는 하마에서 돈 벌어오는 소년가장이 됐어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신감을 갖고 미래 선점 기회를 찾자" 이런 말을 했어요. 직원들에게 쫄지 말고 적극적으로 새 사업을 발굴하라고 지시한 건데요. 126년간 수많은 구조조정과 M&A, 위기를 극복했던 두산이니까 이번에도 위기를 잘 딛고 일어서기를 기원합니다. 이승엽과 양의지 확보한 두산 야구도, 사업도 예전 영광을 되찾을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