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좁은 생존의 관문을 통과한 성체 거북은 천적이 많지 않아 100년 드물게는 몇 백 년 동안 장수하게 된다고 합니다. 생존수가 적지만 장수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 전략입니다.
한국 바이오산업을 바다 거북이의 산란에 비유한다면 현재 어떤 상황일까요? 이제 막 부화해서 모래를 뚫고 나와 바다로 향하려는 순간이지 싶습니다. 이제 곧 냉엄한 생과 사의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상단계로 치자면 성공확률이 가장 낮은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임상2상 단계입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단계는 물질개발부터 동물에 신약물질의 약효와 부작용을 알아보는 비임상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후 환자에게 직접 약을 투여해 보는 임상단계가 진행됩니다. 임상은 임상 1상, 2상, 3상으로 나뉩니다. 임상1상에서는 약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성공확률은 대략 60%를 웃돕니다. 관건은 임상2상입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확인하는 소위 개념증명과정이라고 불리는데 성공확률이 30% 정도에 불과합니다. 6~7년 동안 공들인 신약개발 노력이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지요.

또한 타깃하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신약개발의 성공확률은 크게 달라집니다. 혈액관련 치료제나 감염병치료제는 신약개발 가능성이 높은 편이지만, 최근 거의 모든 바이오제약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암치료제는 성공확률이 5%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로 미국과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의 연구개발 진행 현황은 모달리티별로 차이는 있지만 국내기업 대비 3~5년 정도 앞서고 있어서 신약승인을 받거나 혹은 임상3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바이오시장에서 가장 기술거래가 활발한 ADC(항체약물결합체)의 경우 일본의 다이이찌산쿄와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가 협업해 개발한 유방암치료제 엔허투가 FDA로부터 승인된 것이 2019년이었습니다. 같은 ADC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 레고켐바이오는 중국 포순제약을 통해 진행중인 임상2상이 가장 앞선 파이프라인입니다. 글로벌바이오제약사는 임상2상의 좁은 관문 앞에서 탈락자와 다음단계의 진행자가 한차례 걸러진 반면, 국내 바이오제약기업은 열심히 달려와 이제 막 임상2상이라는 운명의 문을 마주하고 선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거북이가 천적의 날카로운 부리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바다를 향해 천진한 손짓발짓을 할 때마다 마음 졸이며 살아남기를 응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투자한 바이오기업이 임상2상에 성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임상2상 성공확률 30% 법칙은 모든 기업에 적용됩니다. 우리의 감정이입과는 관계없이 단지 30%의 기업만이 살아 남아 다음 여정을 지속하게 되고, 그 중 누군가는 글로벌바이오기업이라는 거대한 성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떤 아기거북이 살아남을지 맞추기 어려운 것처럼 어떤 기업이 임상2상에 성공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전에 가려내는 일은 물질개발과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의 담당 연구개발자조차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따라서 좀 더 투자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기술이전 경험 등 객관적인 확률 보강 작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오 임상단계의 속성과 성공확률을 이해한 투자자라면 빅파마에 기술수출을 한 경험이 있는 바이오텍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거나 ETF로 대응할 것입니다. 아기거북의 생존을 방해하는 밝은 불빛을 제거하듯, 정부도 불필요한 바이오 규제환경을 개선하여 국내 바이오텍의 성공확률을 높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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