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K의 늦깎이 PD-1 면역항암제, 직장암 적응증 확대 제동
늦깎이 PD-1 면역관문억제제로 시장에 데뷔해 복병으로 부상한 젬펄리(성분명 도스탈리맙)의 적응증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신청한 적응증 확대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특정 직장암 환자군으로 젬펄리의 적응증을 확대하려던 제조사 GSK와 이를 규제하는 FDA 간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FDA는 9일(미국 시간) 종양약물자문위원회(ODAC)를 열고 GSK의 적응증 확장 신청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다.

젬펄리는 2021년 불일치 복구결함(dMMR) 재발성 또는 진행성 자궁내막암 치료를 목적으로 FDA에서 신속승인을 받았다. 미국에 출시된 일곱 번째 PD-(L)1 면역관문억제제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GSK는 면역관문억제제 개발 후발주자로서 경쟁약이 없는 암종으로 우선 신속승인을 받은 뒤, 점진적으로 시장성이 우수하거나 또 다른 희귀 암종으로 적응증을 넓히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승인 이후 GSK는 면역관문억제제 시장의 격전지인 비소세포폐암에서 키트루다에 대한 젬펄리의 비열등성을 입증하며 PD-1 면역관문억제제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문제는 GSK가 또 다른 희귀암인 dMMR 직장암으로 젬펄리의 적응증을 넓히려던 중 발생했다. FDA는 GSK가 적응증 확대를 목적으로 수행한 임상 2상의 설계와 결과에 의문점이 있다고 했다.

FDA가 언급한 의문점은 크게 5가지다. 젬펄리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대조군 없는 단일군 임상이 적절한지, 평가지표(12개월 동안 임상 완전반응(cCR) 유지)가 약의 효능을 입증하는 데 적절한지,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약을 승인받기 위한 임상에서 2·3기 환자로 구성된 실험군을 사용한 것이 적절한지, 평가 연구 데이터가 젬펄리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한지, 의료진의 전문성과 치료 후 관리 등의 영향 여부 등이다.

이번 임상(NCT04165772)은 고빈도 현미부수체 불안정형(MSI-H) 또는 dMMR 직장암 2기 또는 3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젬펄리를 투약한 이후엔 표준치료법(SOC)인 화학방사선요법과 직장 절제술이 뒤따랐다. GSK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최소 6개월의 추적관찰 기간을 가졌으며, 치료를 마친 환자 12명에게서 모두 임상적 완전관해(cCR)가 확인됐다. 추적관찰 기간은 6개월에서 최대 25개월이었으며 12개월 동안 완전관해 상태가 유지됐다. GSK 측은 “12개월 동안 완전관해가 유지됐다는 점이 젬펄리의 임상적 이점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FDA가 신속 승인을 결정하는 데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GSK 측이 내비친 자신감과 달리, 업계는 FDA의 지적이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GSK는 젬펄리를 500㎎씩 3주 간격으로 6개월간 9회 투약한 뒤, 화학항암제와 방사선을 이용하는 표준치료를 진행했다. 이후엔 암조직이 남아있는 직장을 절제했다. 직장외 다른 조직으로 암이 전이된 환자들은 등록 단계에서 배제했다. 국내 한 항암 신약개발 전문가는 “젬펄리만 투약한 게 아니라 이후 외과적 수술을 포함한 표준치료를 수행한 데다, 대조군이 없고 심지어 추적 기간도 짧아 약의 효능이나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12개월 동안 cCR을 유지한다’는 1차 평가 지표에 대해 “FDA가 이 같은 평가지표로 신약을 승인해준 전례가 없다”고 했다. 항암제는 보통 전체 생존 기간(OS)이나 무진행 생존기간(PFS) 등을 1차 지표로 한다. 데이터를 얻은 환자가 12명으로 소수에 그치는 점도 GSK 측의 주장에 힘을 뺀다.

이번 임상에서 젬펄리의 역할은 수술 전 보조요법(neoadjuvant)이다. 면역관문억제제 단독으로 암세포 크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수술이나 화학요법 등에 앞서 종양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면역관문억제제 중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가 수술 전 보조요법으로는 지난해 3월 FDA의 첫 승인을 받았다. 승인된 적응증은 초기 비소세포폐암이다.

승인의 근거가 된 임상 ‘CHECKMATE-816’과 젬펄리의 임상을 비교해보면, 옵디보의 임상 평가 기준이 보다 엄격했다. 옵디보는 실험군과 대조군이 모두 있었다. 1차 평가지표로는 무사건생존률(EFS)과 30개월간 병리학적 완전관해(pCR) 비율을 사용했다. 12개월이었던 젬펄리의 완전관해 기간보다 2배 이상 긴 데다, 무진행생존률과 유사한 무사건생존률을 평가지표로 사용해 신뢰도를 높였다. 임상에 등록된 환자는 358명이었다. 다만 CHECKMATE-816은 정식 승인을 목적으로 한 임상 3상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젬펄리의 임상은 신속승인을 목적으로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이었다.

FDA의 이같은 반응에 GSK가 당황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번 임상의 설계 및 진행을 FDA가 허가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임상시험계획(IND) 제출 전은 물론 승인 이후에도 GSK는 FDA와 긴밀한 논의를 해왔을 것”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FDA가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임상 설계를 문제 삼는 상황”이라고 했다.

GSK는 임상 3상을 통해 젬펄리의 임상적 효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FDA는 종양약물자문위원회를 앞두고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젬펄리가 신속승인을 받게 된다면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RCT)을 수행할 것, 임상적 완전관해(cCR) 후 36개월에 대한 무사건진행률을 평가지표로 사용해 젬펄리의 임상적 이득을 증명할 것을 GSK 측에 권한다”고 전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