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일병 가족, 연합뉴스에 밝혀…"선임들이 후임 많이 괴롭혀"
군 "부대 생활 전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조사 중"
"자는데 깨워 청소시켜" vs "사실아냐…모든일과 부대원 함께해"(종합)
"엄마 나 너무 들어가기 싫다.

나 내일 안 들어가면 영창이겠지."
지난 6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대구 공군 방공관제사령부 소속 정모(21) 일병이 휴가 복귀 하루 전날 저녁을 먹으며 모친에게 한 말이다.

정 일병 가족은 지난 8일 대구 동구 한 장례식장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숨진 정 일병에게서 전해 들은 말들을 공개했다.

"자는데 깨워 청소시켜" vs "사실아냐…모든일과 부대원 함께해"(종합)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취침 시간 강제로 기상해 다목적홀로 추정되는 특정 장소를 끊임없이 청소하는 등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를 모친과 외조모 등에게 털어놨다.

정 일병의 누나는 "신병 위로 휴가를 받고 나오자마자 '자대배치 받은 뒤로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며 "자는데 일부러 깨워서 (다목적홀에 있는 동생의) 군화 발자국이 지워질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 청소를 시켰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임들이 후임을 많이 괴롭히는데, 자신이 상병 정도 계급이 됐을 때 후임을 똑같이 괴롭히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면 또 선임이 괴롭힐까 봐 걱정했다"라며 "이런 군 생활을 버티지 못하겠다고 했다"고도 했다.

"자는데 깨워 청소시켜" vs "사실아냐…모든일과 부대원 함께해"(종합)
정 일병은 훈련소에서 150명 중 7등으로 수료했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했고, 고향인 대구에서 근무할 수 있는 병과를 선택해 지원할 정도로 군 생활에 열의를 보였다.

즐거워만 보였던 정 일병의 군 생활에 변화가 생긴 건 지난달 18일 자대 배치 이후라고 가족들은 강조했다.

"자는데 깨워 청소시켜" vs "사실아냐…모든일과 부대원 함께해"(종합)
정 일병 누나는 "분명 훈련소까지는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애가 아니다"라며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친구들이나 훈련소 동기들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 일병 부친은 "지난달 27일 밤 9시 넘어서 부대에 있는 아들과 40분 정도 통화를 했는데 '여기는 80년대 부대'라고 호소했다"며 "'사람들이 다 쓰레기'라고 했는데 그때 대수롭지 않게 들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는데 깨워 청소시켜" vs "사실아냐…모든일과 부대원 함께해"(종합)
이날 부친과 전화를 끊은 정 일병은 누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놓고는 '모든 대화 상대에게서 삭제'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입대한 정 일병은 지난달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5일간 격리 생활을 했다.

정 일병 가족은 "창문 없이 먼지가 자욱한 공간에 5일간 격리됐다"며 "장난처럼 '격리하다가 오히려 병 걸리겠다'고 전화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정 일병 가족은 격리 공간에도 선임병들이 수시로 찾아왔었다고 전해 들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공군은 접촉은 아예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군은 A 일병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휴대전화 2대, 태블릿 PC 1대를 포렌식하고 있다.

정 일병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군은 연합뉴스 보도 이후 "정 일병의 전입 이후 부대 생활 전반에 대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있다"며 "메모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은 또 "취침시간에 잠을 안 재우고 강제로 깨워서 청소를 시켰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청소 등 모든 일과는 부대원이 함께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군은 "정 일병이 격리된 공간은 신축된 최신 건물이며 격리 이후 전입교육, 휴식, 견습근무간 생활관 생활 중에는 장병들과 접촉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일병은 신병 위로 휴가 복귀일인 지난 6일 가족에게 "부대원들이 괴롭혀서 힘들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다.

정 일병은 이튿날 오전 8시 48분께 대구 중구 한 아파트 중앙 현관 지붕에서 숨진 채 경비원에게 발견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