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은 vs 장그래, 바둑 실력은…프로 기사에 물어봤더니 [조희찬의 팝콘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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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문동은 vs '미생' 장그래
바둑으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
바둑으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다음 달 시즌2 공개를 앞둔 ‘더 글로리’는 요즘 바둑계에서도 화제입니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에서 바둑이 극을 풀어가는 재료로 등장했으니까요.
최근 바둑 팬들 사이에선 이런 문동은의 바둑 실력을 놓고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에 다니면서 성인이 된 다음에야 바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그가 ‘탑골공원 고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다니기 때문이죠. 하물며 바둑판에서 소위 ’방귀 좀 뀐다‘는 재야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기원에서도 상대를 모두 깨부수고 다닙니다.
솔직히 스포츠 담당 기자로서 저 역시 이 부분을 보고는 속으로 '선 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틀렸습니다.

◆문동은은 '아마 5단' 수준
일단 문동은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를 제일 잘 알만한 전문가이자 유튜브 채널 ‘프로연우’를 운영 중인 프로 바둑기사 조연우 2단에게 물어봤습니다.조 2단은 현재 프로기사 신분을 숨기고 문동은처럼 공원과 기원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과 대국을 두는 ‘도장깨기’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는데요. 조 2단은 “동네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웬만한 아마추어 고수들을 모두 이기려면 적어도 아마 5단 정도의 실력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2단은 몇몇 장면에서 문동은의 ‘아마 5단급’ 실력을 엿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도영과 대국하는 장면입니다. 조 2단은 “그 대국에서 문동은이 ‘맥점’을 제대로 읽으며 상대 집을 깨부수는 장면이 나왔는데, 고수만 둘 수 있는 수였다”고 했습니다.

◆아마 5단은 '상위 1%' 실력자
그럼 아마 5단은 어느 정도 실력일까요. 한국기원에 물어보니 바둑을 업으로 삼지 않는 아마추어가 다다를 수 있는 사실상 ‘최고 경지’라다고 합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기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최고 아마 단수는 7단으로 아마추어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해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일반인들이 다다를 수 있는 건 6단 정도”라고 전했습니다.조 2단도 “아마추어 중에서도 상위 1% 안에 들거나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이라고 했고요. 골프에 비유하자면 핸디캡이 ‘0’이면서 종종 언더파도 칠 수 있는 고수 중의 고수라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문동은은 대학교 재학시절인 2010년대 초반부터 바둑 공부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하는 게 2020년대인 것을 고려하면 약 10년간 바둑 공부를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 2단은 “5년은 부족한 감이 있지만 10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이라며 “물론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집중해서 바둑만 공부할 때 얘기다. 복수를 위해 독하게 마음을 먹은 문동은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명인 중에서도 성인이 된 뒤에 바둑을 공부해서 '수준급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 있습니다. 가수 김장훈이 대표사례입니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김 씨는 공식적인 단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아마 5단 정도의 기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또 코미디언 엄용수 씨가 5단 기력을 지닌 '은둔 고수'라고 알려져 있고요. 배우 윤세아 씨는 아마추어대회 1기 여류국수전 우승자인 어머니에게 'DNA'를 물려받아 취미가 바둑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가수 손승연 씨가 알려진 '바둑 고수'입니다.

◆문동은, 장그래보다는 한 수 아래
이왕 진지해진 거 조금 더 진지해져 봤습니다. 지금까지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는 많이 있었죠. 그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드라마는 '미생', 영화는 '신의 한 수'정도 일 텐데요.일단 '신의 한 수'는 문동은이 명함도 못 내밀만한 고수들이 등장합니다. 시작부터 정우성이 연기한 주인공인 송태석이 프로 바둑 기사로 나오고요. 이시영이 열연한 권은정 역시 천재적인 프로 바둑 기사로 등장합니다. 그나마 공원에서 내기바둑을 두는 '주님'(안성기 분)이 문동은과 재밌게 대국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미생에서 임시완 씨가 맡은 장그래(임시완 분)는 문동은이 이길 수 있을까요. 이에 조 2단은 "프로 기사 연습생의 수준은 예비 초단 수준으로 아마추어보다는 한 단계 위라고 봐야 한다"며 "사실상 프로 초단과 아마 7단 사이에 있는 고수로 문동은이 이기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