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고향의 뒷산, 산악인으로서 살 수 있는 원동력 줘"
강원도청 방문, 고향사랑기부금 100만원 증서 전달
남극점 원정 김영미 대장 "포기하지 말라고 영감 준 곳이 야생"
"포기하지 말라는 영감을 주는 장소가 야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매력에 끌려서 남극 원정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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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어떠한 보급도 받지 않고 최근 남극점에 도달한 산악인 김영미(42) 대장이 9일 오후 강원도 찾아 고향사랑기부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김 대장은 "전에도 등반하고 나서 기부를 몇 번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소하게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사랑기부금을 전달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남극점 단독 원정과 얽힌 뒷이야기를 밝혔다.

50일 동안 1천185㎞를 혼자 100㎏이 넘는 썰매를 끌며 남극에 도달한 김 대장이 애초부터 단독 원정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팀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일정이 길기도 하고 굉장히 힘든 곳이어서 결국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루 4천∼5천 칼로리를 소모하기에 국내 설악산에서 매일 40㎞씩 걷는 기초 훈련을 했지만, 남극의 환경은 가혹했다.

육체적인 고통은 예상보다 더 강했고, 위험하기까지 했다.

영하 20∼30도를 오가는 냉동고 같은 곳에 종일 노출돼 있다 보니 동상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부가 썩어 괴사하는 허벅지 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해 패딩 반바지를 덧대고, 그 위에 패딩 치마까지 덧입었다.

장갑은 텐트 칠 때와 운행할 때 쓰는 것을 분리하고, 찬바람으로부터 몸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허벅지 앞쪽 주머니에 장갑을 넣는 등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

어느 순간이 위험했느냐는 질문에는 "배고프고 갑자기 살이 많이 빠지니까 어지럽기까지 했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이러다가 혼자 아무 데나 쓰러져서 잠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주의하게 됐던 순간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히말라야 등반이나 남극점 원정이 고통과 위험을 동반함에도 그에게는 떨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는 2008년에는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바 있다.

김 대장은 "제게 포기하지 말라는 그런 영감을 주는 장소가 산과 같은 야생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강릉대 산악부가 후배가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인 현실에 대해서는 "산과 바다가 있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힐링하며 한 걸음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굳이 힘든 등반을 하는 소감을 묻는 말에는 "개개인이 달성하고자 하는 거는 다 다르다.

서로 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갔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본인이 가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가 있고, 조금 궁핍한 삶이라도 견딜 수 있다는 마음, 거기에다 등반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청춘의 마그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인생의 몇 년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최초로 무보급 상태로 남극점에 도달하는 데는 고향인 평창 산골 마을에서 자란 경험도 일조했다.

김 대장은 "(북한) 공비가 나타나면 군인들이 집 뒤에 비트를 파고 보초를 설 정도로 산골에서 자랐다"며 "산악인으로서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주고 기댈 수 있는 곳이 고향의 뒷산"이라고 소개했다.

남극 원정으로 체중이 14㎏ 빠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가 최근 격리 해제된 김 대장은 당분간 건강 회복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여기 간다'고 공개하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빨리 건강을 회복하는 데 힘쓰겠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리겠다"며 회견을 마무리했다.

김 대장은 지난해 11월 27일 남극 대륙 서쪽 허큘리스 인렛에서 출발해 51일 동안 113kg의 썰매를 끌고 지난달 남위 90도에 도달했다.

한국 탐험사에서 남녀를 통틀어 무보급 단독으로 남극점에 도달한 경우는 김 대장이 처음이다.

남극점 원정 김영미 대장 "포기하지 말라고 영감 준 곳이 야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