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적 양극화는 좌파정치의 탓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사람이 먼저다' 외치던 文 정권
모든 국민 아닌 지지층만 바라본
소주성·부동산 실책, 친중 행보
사회통합과 먼 갈라치기 정치
이재명 민주당, 맹목적 개딸 득세
좌파정치 폐해 막는 제도 필요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모든 국민 아닌 지지층만 바라본
소주성·부동산 실책, 친중 행보
사회통합과 먼 갈라치기 정치
이재명 민주당, 맹목적 개딸 득세
좌파정치 폐해 막는 제도 필요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정치 성향이 다르면 밥도 함께 먹기 싫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불신하고, 혐오하고 도덕적으로 사악한 사람들로 본다는 것이다. 이같이 한국 사회가 서로를 배척하면서 좌익과 우익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정치적 양극화 논리다. 흥미로운 건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과 그런 양극화의 극복 방안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소선거구제의 승자 독식 시스템이 정치적 양극화를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86세대가 퇴장하고 밀레니얼 세대가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2030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제안들은 제각각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좌우 갈등을 해소하는 해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좌·우파 양측에 양극화의 원인이 있다는 양비론적 시각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과거의 좌익 정권들, 특히 문재인 정권과 현재 이재명이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사회에 끼친 치명적인 해악이 바로 정치적 양극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사람이 먼저다’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에게 사람이란 ‘모든 국민’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사회를 통합하기보다 내편 네편으로 갈라치기 정치를 한 것이다. 좌파를 ‘우리’로 우파는 ‘그들’로 적대적으로 구별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국정철학의 기조였다. 그 치명적 결과가 정치적 양극화·갈등이다.
예를 들면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우리 사회의 장래 먹거리로 세계적 경쟁력이 있던 원전을 없애는 탈원전, 나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명분으로 자기편에게 빚을 얻어서까지 잔칫상을 차려주는 복지 정책, 주택·부동산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26전 26패로 끝난 주택정책 등은 일반적 상식에서 벗어난 갈라치기 정책이다. 그 결과는 분배의 악화, 실업과 저성장이었다. 이러다가 베네수엘라처럼 한국 경제가 망하는 게 아닌지 우파들이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고, 지적 수준이 아주 낮은 정권을 무턱대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싫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득주도성장의 억지 성과 내기, 탈원전의 타당성 입증하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통계 조작·은폐·왜곡 등은 한국의 좌익 정권엔 일상적인 듯 보인다. 그런 정권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지극히 당연하게도 우파가 싫어하고 불신하고 심지어 증오한다.
우리 사회를 좌우 극단으로 치닫게 한 건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토지의 국유화를 도입하는 좌익 정권의 개헌 시도였다. 우파 시민의 눈에는 도덕적으로 사악하게 보이는 좌익 지지 세력의 도움으로 문 정권이 한국 경제를 베네수엘라 러시아 중국 터키 등의 사회주의로 이끄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그런 의구심을 심화한 건 북한 김정은과 중국의 시진핑을 아주 각별하게 우대하고 상전으로 모시는 문 정권의 종북 친중 정치였다. 자유·민주와 번영을 지켜온 대한민국의 국격과 우파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종북좌파의 소굴로, 우리 사회는 간첩이 우글거리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북한에 먹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함께 문 정권의 세상 물정 모르는 지지자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좌우의 갈등이 증폭된 계기는 이재명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부터다. 이유가 무엇이든 형수에게 욕설을 퍼붓는 ‘패륜아’를 좌파가 지지하는 걸 보고 우파들은 자괴감에 빠져 저런 좌파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싫다고 한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가 된 이후 좌우 갈등은 줄어들기는 고사하고 더욱 늘었다. 대장동·변호사비 대납 사건 등 수많은 범법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진영 논리에 함몰돼 무턱대고 이재명을 추종하는 ‘개딸’과 ‘양아들’과는 상종할 수 없다고 몸서리친다.
우파는 좌파에게 수준 높은 도덕과 지식이 아닌, 상식 수준을 요구한다. 그런 수준에도 못 미치는 좌파는 국정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국민적 명령이 우파가 승리한 세 번의 선거를 통해서 내려졌다. 우파 국민이 보기에 좌파는 자유, 번영, 평화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늘 깎아 먹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좌파 정치를 막는 자유의 제도가 필요한 때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소선거구제의 승자 독식 시스템이 정치적 양극화를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86세대가 퇴장하고 밀레니얼 세대가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2030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제안들은 제각각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좌우 갈등을 해소하는 해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좌·우파 양측에 양극화의 원인이 있다는 양비론적 시각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과거의 좌익 정권들, 특히 문재인 정권과 현재 이재명이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사회에 끼친 치명적인 해악이 바로 정치적 양극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사람이 먼저다’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에게 사람이란 ‘모든 국민’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사회를 통합하기보다 내편 네편으로 갈라치기 정치를 한 것이다. 좌파를 ‘우리’로 우파는 ‘그들’로 적대적으로 구별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국정철학의 기조였다. 그 치명적 결과가 정치적 양극화·갈등이다.
예를 들면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우리 사회의 장래 먹거리로 세계적 경쟁력이 있던 원전을 없애는 탈원전, 나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명분으로 자기편에게 빚을 얻어서까지 잔칫상을 차려주는 복지 정책, 주택·부동산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26전 26패로 끝난 주택정책 등은 일반적 상식에서 벗어난 갈라치기 정책이다. 그 결과는 분배의 악화, 실업과 저성장이었다. 이러다가 베네수엘라처럼 한국 경제가 망하는 게 아닌지 우파들이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고, 지적 수준이 아주 낮은 정권을 무턱대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싫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득주도성장의 억지 성과 내기, 탈원전의 타당성 입증하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통계 조작·은폐·왜곡 등은 한국의 좌익 정권엔 일상적인 듯 보인다. 그런 정권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지극히 당연하게도 우파가 싫어하고 불신하고 심지어 증오한다.
우리 사회를 좌우 극단으로 치닫게 한 건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토지의 국유화를 도입하는 좌익 정권의 개헌 시도였다. 우파 시민의 눈에는 도덕적으로 사악하게 보이는 좌익 지지 세력의 도움으로 문 정권이 한국 경제를 베네수엘라 러시아 중국 터키 등의 사회주의로 이끄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그런 의구심을 심화한 건 북한 김정은과 중국의 시진핑을 아주 각별하게 우대하고 상전으로 모시는 문 정권의 종북 친중 정치였다. 자유·민주와 번영을 지켜온 대한민국의 국격과 우파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종북좌파의 소굴로, 우리 사회는 간첩이 우글거리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북한에 먹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함께 문 정권의 세상 물정 모르는 지지자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좌우의 갈등이 증폭된 계기는 이재명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부터다. 이유가 무엇이든 형수에게 욕설을 퍼붓는 ‘패륜아’를 좌파가 지지하는 걸 보고 우파들은 자괴감에 빠져 저런 좌파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싫다고 한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가 된 이후 좌우 갈등은 줄어들기는 고사하고 더욱 늘었다. 대장동·변호사비 대납 사건 등 수많은 범법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진영 논리에 함몰돼 무턱대고 이재명을 추종하는 ‘개딸’과 ‘양아들’과는 상종할 수 없다고 몸서리친다.
우파는 좌파에게 수준 높은 도덕과 지식이 아닌, 상식 수준을 요구한다. 그런 수준에도 못 미치는 좌파는 국정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국민적 명령이 우파가 승리한 세 번의 선거를 통해서 내려졌다. 우파 국민이 보기에 좌파는 자유, 번영, 평화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늘 깎아 먹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좌파 정치를 막는 자유의 제도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