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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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샤넬 매장은 예상과는 달리 한산했습니다. 매번 늘어서 있던 대기 줄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매장 직원들은 “요새 긴 대기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최근 들어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롯데 잠실 에비뉴엘 등 주요 백화점 샤넬 매장은 평일이면 대기 인원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난해까지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행위) 대란으로 몇 시간씩 줄을 서도 당일 매장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과는 달라졌습니다.

간간이 매장을 칮은 소비자들도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날 방문한 샤넬 매장에는 ‘없어서 못 판다’는 클래식 플랩백, 베니티백, 22백 등 인기 제품들이 대부분 남아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너무 비싸다”며 상품을 그냥 내려두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날 샤넬 매장을 방문한 30대 여성 소비자는 “매장에서 제품을 착용해보고 싶어서 왔다”며 “리셀가가 많이 떨어져 구매는 온라인 리셀마켓에서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샤넬 매장 진열창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샤넬 매장 진열창 모습. /연합뉴스
실제로 샤넬 제품 소비자가는 ‘경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이 올랐습니다. 샤넬은 지난해 11월 가방 등 제품 가격을 최대 13% 올렸습니다. 2012년에 이어 2022년에도 한 해 총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었습니다. 샤넬의 대표 제품으로 꼽히는 클래식 미디움백은 1316만원까지 올랐습니다. 이 가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1월(715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동일 제품군인 다른 사이즈 클래식백 가격 상승분을 보면 △뉴미니 594만원→637만원 △스몰 플랩백 1160만원→1237만원 △맥시 핸드백 1413만원→1508만원 등 6~13% 뛰었습니다. 다른 인기제품인 가브리엘 호보 스몰 제품은 기존 688만원에서 739만원으로 7.41%, 체인지갑(WOC)은 399만원에서 432만원으로 8.27% 올랐습니다.

반면 리셀가는 점점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가격 인상 주기가 짧아지면서 리셀 시장을 노리는 이른바 ‘노숙런’(매장 앞에서 밤새 대기하다 구매하는 오픈런)이 샤넬 제품의 희소성을 떨어뜨리며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 리셀가는 지난달 말 기준 1165만원가량입니다. 1년 전만 해도 1400만원대에 팔렸지만 리셀 가격이 200만원 이상 떨어졌습니다. 웃돈은커녕 정가(1316만원)보다 낮아진 게 포인트입니다. 이제 매장에선 제품을 둘러보고 구매는 리셀시장에서 하는 상황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 샤넬 매장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 샤넬 매장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명품 브랜드의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올해 명품 매출 성장세는 꺾일 것이 분명해서입니다.

글로벌 투자기업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연구원은 “만약 가격을 계속 이렇게 빠르게 올린다면 명품 브랜드들은 ‘고통스러운 조정(painful correction)’을 해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도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성장세가 다소 둔화될 수 있다는 예측은 했지만 이처럼 분위기가 빠르게 변할지는 몰랐다”며 “성장세 경착륙(급격한 침체)을 원하는 브랜드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샤넬은 제작비, 원재료 변화와 환율 변동을 고려해 정기적으로 가격을 조정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초 “샤넬이 급증하는 수요를 이용해 더 높은 등급으로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업계에선 에르메스를 따라잡기 위해 초럭셔리로 나섰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로 샤넬은 슈퍼리치를 위한 ‘프라이빗 부티크’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매장에서도 VIP(우수고객)를 잡기 위한 마케팅에 공들이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다만 예상보다 소비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샤넬의 ‘에르메스화’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코로나19 진정 국면 이후 해외여행 재개 등 다른 분야로 지출이 쏠리면서 전반적인 명품 지출이 줄어들었습니다. 명품 판매를 좌지우지하는 중국의 성장세도 예상보다 부진합니다. 지난해 3%에 그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당초 목표치 5.5%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실제 2010~2014년 중국 경제 호황기가 끝나자 수많은 명품이 판매 부진에 가격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샤넬도 주요 제품 가격을 20% 내리고 할인 판매에 나선 바 있습니다. 최근의 심상찮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어보입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