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속에서 요동치는 삶…신간 '비극'
"비극의 집에 욕실이 있다면 그곳은 아가멤논이 살해되기 위한 곳이다.

"
미국의 문학평론가 조지 스타이너의 말이다.

비극은 흔히 추락으로 끝난다.

리어왕의 추락이나 오셀로의 몰락, 아가멤논의 죽음 등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광기, 존속살인, 근친상간, 영아살해 등 극악무도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비극적 사건은 주인공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오이디푸스는 갓난아기 때 버려졌지만, 결국 예언에 따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다.

백성을 살피는 명민한 군주가 되지만 추후 존속살인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의 몰락은 그의 부덕과 관계가 없다.

그저 운명에 의한 것이다.

요컨대 비극의 깊이는 추락의 높이에서 발생한다.

높은 지위의 고귀한 존재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평민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스타이너는 "비극은 공리주의적 윤리나 평등주의적 정치를 견딜 수 없다.

비극은 예술형식 가운데 귀족으로서 무엇보다도, 참담하게 산문적인 시대의 중심에서 영적으로 더 고양된 사회질서의 기억 흔적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이자 문학평론가 중 한 명인 테리 이글턴은 신간 '비극'(을유문화사)에서 스타이너의 견해를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하이데거, 카뮈, 라캉, 지제크 등 다양한 철학자·문화비평가·작가의 사유를 불러와 현시대의 비극에 대해 논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비극 작품들을 여러 비평가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기에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고양하는 장르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비극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정영목 옮김. 28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