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자동차 사고로 두 다리를 크게 다친 타이거 우즈(48·미국)는 자신의 선수 인생에 ‘시한부’를 선고했다. 지난해 출전한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육체적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프로골퍼는 대회마다 적어도 8~9㎞를 걷는데 우즈의 다리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경기가 끝나면 우즈의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고통스런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우즈는 “내가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 (지금의 재활이) 심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 해에 많아야 메이저대회 네 개와 일반대회 한두 개에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즈의 은퇴 시기를 고려할 때 고작 20여 개 대회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승할 생각이 없다면 뛰지 않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것을 감안하면 우즈에게 주어진 시간은 현실적으로 3~4년 정도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과 우정 쌓아온 우즈

그런 우즈가 몇 장 남지 않은 출전 카드를 오는 16일 개막하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총상금 2000만달러)에 쓰기로 했다. 우즈는 지난 11일(한국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할 준비가 됐다”고 적었다. 지난해 12월 PNC 챔피언십에 나선 후 2개월 만에 필드에 나가는 것이다. PGA투어 대회로 한정하면 지난해 7월 열린 메이저대회 디오픈 챔피언십 후 처음이다.

우즈의 출전은 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 일단 이번 대회가 우즈가 호스트를 맡고 있는 대회라는 점이다. 그는 후원사를 모으고 대회 운영까지 책임진다. PGA투어에는 ‘레전드’들이 호스트로 참여하는 대회가 세 개 있다. 고(故) 아널드 파머의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 잭 니클라우스(83·미국)의 메모리얼 토너먼트, 그리고 우즈의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이다. 올해는 ‘17개의 특급 대회’ 가운데 하나로 지정돼 판이 더 커졌다. 우즈가 애정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해도 우즈가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나서는 건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우즈의 참가 소식을 들은 욘 람(29·스페인)은 기자들에게 “우즈가 정말 (제네시스 대회가 열리는) 리비에라에서 뛰는 것이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우즈가 시즌 첫 번째 대회로 이 대회를 고른 이유는 제네시스와 맺고 있는 스폰서-호스트 이상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는 게 골프계의 후문이다. PGA투어 관계자는 “우즈가 사고 때 목숨을 구할 수 있던 게 제네시스 차량 덕분이라는 보도가 많이 나오지 않았느냐”라며 “우즈가 사고 후 제네시스 쪽에 비공식적으로 감사를 표시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우즈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7년째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타이거우즈재단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운영을 맡은 뒤 친분을 쌓아온 정 회장과 우즈는 개인적으로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우즈의 사고 소식이 세계에 전해졌을 때 차를 홍보할 좋은 기회라는 얘기가 나오자 정 회장은 “사람이 다쳤는데 차를 홍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지난해 이 대회를 앞두고 가진 식사 자리에선 우즈가 “고맙다”며 정 회장이 일어나기 전 몰래 식사 비용을 결제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14번 출전해 한 번도 우승 못한 코스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 리비에라CC는 우즈에게 애증의 골프장이다. 서부지역 최고 명문 코스로 꼽히는 리비에라CC 인근에서 자란 우즈는 이 골프장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아왔다. 만 16세의 나이에 PGA투어 데뷔전을 치른 곳도 1992년 LA오픈이 열린 이곳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만남부터 ‘악연’이었다. 첫 번째 출전에 받아든 성적표는 커트 탈락이었고 후에 13번 더 출전했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우즈가 세 번 이상 출전해 우승하지 못한 대회는 리비에라CC에서 열린 대회뿐이다. 그런 골프장에서 매번 자신의 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