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 작가, 첫 장편 '인센디어리스' 한국어판 출간
"서로 다른 세계관 간극 담아"…"문학은 외로움 치유 연고"
'파친코' 감독 드라마로 제작…"내겐 정치적 의미 갖는 일"
소설가 권오경 "신앙 잃은 17살의 나를 위해 쓴 소설이죠"
"17살 때 신앙을 잃은 건 중차대한, 결정적인 상실이었어요.

당시 처절하게 외로웠던 17살짜리 소녀를 위해 이 책을 쓰고 싶었죠."
한국계 미국 작가 권오경은 10년에 걸쳐 첫 장편소설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문학과지성사)를 쓰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17살의 자신을 떠올렸다.

소녀 시절 맞닥뜨린 신앙과의 결별은 성인이 된 지금도 매일 느끼는 큰 슬픔이다.

최근 데뷔작을 국내에 출간한 그는 지난 11일 화상 간담회에서 "어린 시절 목사가 되고 싶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며 "신앙을 잃은 뒤 세계관의 간극이 컸다.

제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슬픔의 원천"이라고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집필하는 그는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LA) 한인 사회와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책을 통해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며 기독교인으로서 가진 신념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세계관의 변화는 "큰 쇼크였다"고 한다.

소설가 권오경 "신앙 잃은 17살의 나를 위해 쓴 소설이죠"
2018년 미국에서 출간한 이 작품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세계관이 다르면 어떻게 될까"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소설은 민감한 주제인 사이비 종교, 신에 대한 믿음을 축으로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엔 평범한 삶을 파괴하는 상실의 고통,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 빚어낸 파열음을 파고들었다.

한국계 여성 피비가 어머니의 죽음 뒤 극단주의 기독교단체에 빠져 임신중절 수술 병원을 공격하는 테러범이 되는 과정이 흡입력 있게 전개된다.

그는 "종교가 끌어당기는 매력 중 하나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라며 "저는 이런 확신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모두 담고자 피비를 사랑하는 남성 윌, 컬트 종교 단체 교주 존 릴 등 세 사람의 시점을 교차하며 서술했다.

그는 "우리 영혼이 영원히 살 것이란 믿음에서 결국 우린 모두 흙으로 돌아가 작은 먼지나 알갱이가 될 것이란 세계관 간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이민자로서의 디아스포라적 요소와 여성주의적 시각, 낙태와 테러 등 미국 사회 문제까지 두루 짚었다.

그는 "미국에선 기독교가 많이 공론화되는 주제이고, 낙태 문제는 선거철마다 대두되는 정치적 현안"이라고 했다.

소설가 권오경 "신앙 잃은 17살의 나를 위해 쓴 소설이죠"
권오경이 처음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건 아니다.

작가의 꿈이 있던 그는 은행업계 같은 현실적인 길을 위해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절망적이었다.

"글을 쓰라"는 엄마의 조언에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이 작품으로 뉴욕타임스 '주목받는 작가 4인'에 꼽혔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존 레너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그는 "문학은 저의 마음과 정신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한국어판 출간으로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기쁘다"는 소감도 전했다.

이 작품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이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

"(영상화 소식은) 제게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일이어서 흥분됐어요.

할리우드와 방송 업계에서 아시아인이 나오면 인기가 없을 거란 믿음이 얼마나 틀렸는지 지난 5년간 우리가 잘 증명해왔죠. 현재 자라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제가 자랄 때와 다른 환경에서 자랄 것이란 게 기뻐요.

"
그는 아시아계를 향한 환호와 혐오의 이중적 현상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한국계 작가 책이 출간되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는 것에 신나고 흥분됐다"며 "그러나 아시아계가 부상한 반면에 혐오하는 폭력도 많아져 분노한다"고 말했다.

권오경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눈 밑에 검은 아이섀도를 바르는 것도 이런 지점과 닿아있다.

그는 "한국계 여성은 약하고 순종적이고 만만하다는 편견이 있다"며 "편견에 맞서고자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통해 편견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두 번째 소설을 7년째 작업하고 있다.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사진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둘은 모두 여성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여성의 야망과 욕구"를 탐색할 계획이다.

그도 '커밍아웃'한 소수자다.

그는 "문학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연고이자 약"이라며 "(앞으로도) 큰 상실에 대한 글을 쓰려 한다.

저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얘기하는 책에서 동지애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00번도 족히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비롯해 차학경, 이민진 등 1세대 한국계 작가들의 책이 힘이 됐다.

"(이들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서의 모델이 되어 주신, 존경할 챔피언이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