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군산 조선소의 부활
조선업의 흥망은 국력과 궤를 같이한다. 한 번 무너지면 부활이 쉽지 않다. 초기 강자는 영국이었다. 강선(鋼船)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다. 그 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와 일본이 차례로 정상에 올랐다. 1990년대 이후는 한국의 시대였다. 대규모 투자와 블록의 대형화·모듈화, 자동화·기계화 등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이때 상징적 사건이 ‘말뫼의 눈물’이다. 2002년 스웨덴 최대 조선업체 코쿰스의 높이 140m짜리 대형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려 한국행 배에 실리자 조선소가 있던 말뫼시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다.

한국은 자만했다. 조선업 호황에 회사들은 쉽게 지갑을 열었고, 귀족 노조는 요트와 골프로 날을 샜다. ‘조선의 도시’ 거제에서는 지나가는 개들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방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201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수주 절벽’으로 이듬해 대규모 적자가 났고, 2017년엔 구조조정 광풍이 휘몰아쳤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게 그해 7월이다. 현지 직원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협력업체 90%가 문을 닫았다. 정확히 15년 만에 ‘말뫼의 눈물’이 군산에서 재현된 것이다.

군산 조선소의 부활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지난해 10월 조선소가 폐업 5년3개월 만에 재가동을 시작하더니, 지난주 첫 제품을 출하했다. 조선소는 밀려드는 일감에 구인난을 겪고, 지역 상권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세계 조선업 역사상 드문 일이다. 말뫼라는 산업도시는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조선이 아니라 벤처로 업종을 바꾼 뒤였다. 군산 조선소의 부활은 글로벌 조선업과 한국 제조업에 소중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마침 이런 기적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명을 ‘HD현대’로 바꾸고 경기 판교에 새 사옥을 마련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영국 바클레이스은행 관계자들을 설득해 받아낸 차관으로 설립한 회사가 첨단 기술의 메카에 둥지를 튼 것이다. HD현대그룹이 군산에서 지핀 기적의 불씨를 살려 조선 강국의 위상을 굳건히 해나가기를 바란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