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가 어떻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까. 엔비디아 전·현직 임직원은 입을 모아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의 ‘생태계 구축 전략’을 꼽았다. 반도체 칩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해 ‘엔비디아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고객사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게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의 역사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MD 엔지니어 출신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은 지인 두 명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처음엔 중앙처리장치(CPU) 개발을 꿈꿨다. 하지만 인텔의 벽을 실감하고 GPU로 방향을 틀었다. 젠슨 황은 PC에서 고용량 그래픽을 처리하는 반도체의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게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 그래픽처리장치(GPU)다. GPU는 픽셀 단위의 대용량 그래픽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데 특화된 칩이다. GPU를 활용하면 CPU를 쓸 때보다 전자기기의 그래픽 성능이 높아진다. 2000년대 들어 엔비디아는 ‘지포스(GeForce)’ 시리즈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게임용 GPU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다.

젠슨 황은 대용량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GPU가 게임을 넘어 모든 산업에 활용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GPU 생태계의 확장 가능성을 깨달은 것이다. 2006년 GPU를 범용으로 활용하게 하는 엔비디아 전용 프로그래밍 모델 ‘쿠다(CUDA)’를 공개하고 이를 개발자들에게 배포했다. 2010년대 초반 AI 관련 학술대회에선 엔비디아의 GPU가 CPU보다 딥러닝, 머신러닝 등에 유용하다는 게 입증됐다. ‘GPGPU’라고 불리는 AI 컴퓨팅용 범용 GPU의 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2010년대 후반 AI가 세계로 확산하고 2020년대 들어 ‘메타버스’가 관심을 끌면서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졌다. 엔비디아는 AI 학습, 추론에 특화된 GPU를 앞세워 AI 시대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젠슨 황은 2020년 “엔비디아는 반도체가 아니라 AI 기업”이라며 정체성 변화를 시도했다.

이듬해인 2021년 11월 젠슨 황은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엔비디아는 ‘컴퓨팅 플랫폼’ 기업”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선 메타버스 플랫폼 ‘옴니버스 아바타’, 로봇 개발 플랫폼 ‘아이작’, 자율주행차 플랫폼 ‘엔비디아 드라이브’ 등을 공개했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AI 플랫폼 등을 모두 아울러야만 고객사를 엔비디아의 생태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칩 같은 하드웨어(HW)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최적의 성능과 안정성을 끌어내는 소프트웨어(SW)가 없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