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전세사기 안 당하려면, 무등록 중개 거래 피해야"
“신축 빌라는 시세가 형성되지 않아 사업자가 전세가를 높게 잡아도 세입자가 속기 쉽죠. 토박이 공인중개사들은 금방 잡아냅니다. 빌라 업자가 얼마에 땅을 사들였는지 아니까 적정 분양가를 계산해낼 수 있죠.”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사진)은 13일 서울 봉천동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 기자와 만나 “실력을 갖춘 노련한 중개사를 활용해야 전세 사기를 막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집값 하락에 따른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다세대 연립 등 신축 빌라에서 세입자를 상대로 한 사기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전세 시장의 신뢰가 추락한 것이다. 이 회장은 “전세시장 교란 행위를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설립 37년차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전국 공인중개사를 한데 모은 단체다. 이 회장은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다 39세 때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17년간 충남 당진 천안 등에서 중개사로 활동했다. 그도 한때 빌라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병행해 봤다고 한다. 협회의 충남 지부장을 거쳐 지난해 1월 회장에 선출됐다.

이 회장은 협회가 공인중개사를 대표하는 유일한 조직임에도 중개 거래시장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연간 전국 부동산 매매의 40%가 중개사를 거치지 않는 거래”라며 “이 중 사인 간 직거래는 5%에 불과하고 나머지 35%는 분양 컨설팅 업자 등 무등록 중개인을 통해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화곡동 전세 사기 등 대부분 중개 거래 범죄가 이 같은 무등록 업자를 통해 이뤄졌다는 게 협회의 분석이다.

이 회장 취임 후 내건 숙원 과제는 현재 임의단체로 규정돼 있는 협회의 지위를 ‘법정단체’로 만드는 일이다. 변호사 건축사 등 다른 전문 직역처럼 중개사들의 협회 가입을 의무화하고 윤리강령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르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회장은 “부적절한 중개 거래를 지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은 구·시·군청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담당 공무원 1~2명 정도에 불과한 관청이 모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을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협회에 중개사들의 관리 감독권을 줘야 한다”며 “중개사에게 선순위 임차인 정보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 대상 물건에 대한 보증금 총액까지 확인할 수 있는 권한도 종합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공인중개사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공인중개사라는 직업 자체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60점 이상 점수를 획득하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절대평가를 상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놓은 상태다.

글=박종필/오유림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