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화학섬유노조(화섬노조) 대의원 대회엔 그동안 볼 수 없던 이색 안건이 하나 올라왔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사무직 중심인 네이버 지회에서 화섬노조의 명칭을 ‘공감 노조’로 바꾸자는 안건이다. 화섬노조 간부는 “노조 명칭에 ‘전국’ 등의 이름이 반드시 있어야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성 노조에 MZ세대의 유입이 늘면서 틀에 박힌 노조의 관행이 하나둘 깨지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 조합원의 정년퇴직과 맞물려 젊은 세대가 증가하면서 명칭 변경과 같은 변화가 점차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화학·섬유산업 종사자 중심인 화섬노조는 민주노총 내에서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출범 시기는 1997년이다. 하지만 2018년 네이버 노조가 합류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네이버를 시작으로 정보기술(IT) 회사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카카오, 한글과 컴퓨터, 웹젠 등이 합류하며 조합원 수가 4만3800명까지 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40대가 주류를 이루고 대부분 사무직 노동자란 것이다. 40~50대, 제조업 노동자 중심인 기존 화섬노조원들과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명칭 변경 작업은 금세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화섬노조의 뿌리를 자처하는 화학 분야 공장 노조의 반대가 컸다. 한 노조 간부는 “IT 쪽으로 노동 운동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명칭 변경 문제는 세 표 차로 부결됐다. 하지만 대의원 재석 247명 중 162명의 찬성표가 나오는 등 MZ세대의 위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앞으로 산별 노조 안에서도 주도권을 두고 젊은 세대와 장년층, 사무직과 공장 노동자들이 부딪칠 것”이라며 “이런 헤게모니 싸움이 축적되면 노동운동의 방향이 어느 순간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