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회사서 20조 긴급 차입…"올 반도체 투자 계획대로 집행" 의지
삼성전자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긴급 차입했다. 경쟁사의 투자 축소·감산 기조에도 올해 반도체 투자를 계획대로 집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14일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운영자금 목적 자금 20조원을 차입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193조1937억원)의 10.35%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이다. 이자율은 연 4.6%로 만기일은 2025년 8월이다.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계열사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빌린 건 ‘반도체 시설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기준 53조1000억원을 시설투자에 썼다. 이 중 반도체 사업에 47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반도체 시설투자 규모와 관련해 “지난해보다 줄이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나타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관련해서도 경기 평택과 미국 테일러의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보통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활용해 국내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증권업계에선 반도체 업황 악화 영향으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43조3800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15조원 안팎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100조원 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대부분 미국 등에 있는 해외법인이 갖고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고금리 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돈을 빼오기보다 자회사로부터 현금을 빌려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은 다음달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는다. 책임경영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진행 중인 재판 등을 감안해 등기임원 복귀 시점을 미룬 것으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