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연주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연주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정경화(75)는 한국이 클래식 음악 강국으로 부상하기 훨씬 이전에 세계 정상급 연주자 반열에 오른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다. 강렬한 음색과 화려한 기교로 유명한 그의 이름 앞에는 ‘바이올린 여제’ ‘아시아의 표범’ ‘현 위의 마녀’ 등의 수식이 늘 따라붙었다.

그는 1967년 지구촌 최고 권위의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이스라엘 출신 명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연주자의 저력을 알렸다. 이후 앙드레 프레빈, 다니엘 바렌보임 등 지휘 명장이 이끄는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했다.

그가 14일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듀오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 소식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등학생 남짓의 어린 학생부터 수염을 기른 50대 음악가까지. 정경화를 향한 ‘팬심’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오후 7시30분. 무대에 오른 정경화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청중을 바라본 뒤 숨을 고르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첫 작품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정경화는 시작부터 특유의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브람스의 묵직한 서정성을 온전히 표현해냈다. 비브라토의 속도, 현에 가하는 장력 등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작품에 담긴 풍부한 색채를 뽑아냈다. 브람스가 오스트리아 휴양지 푀르차흐의 아늑한 풍광에서 얻은 다채로운 영감이 그의 바이올린 선율로 펼쳐졌다. 2011년부터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의 합은 듣던 대로 뛰어났다. 서로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음량은 물론 음악적 표현, 연주 속도 등 선율에 담아내고자 하는 모든 요소가 긴밀히 맞물렸다. 정경화가 케너를 두고 ‘영혼의 동반자’라고 말한 것은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첫 곡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바이올린 소리가 유연하다기보다는 굳은 편에 가까웠는데, 다음 곡인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이 이어지자 정경화 특유의 강렬한 음색과 카리스마가 살아났다. 예열이 끝났다는 듯 그는 활을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 정열적인 악상을 표현해냈다. 강한 터치로 무대 장악력을 키우다가도 순식간에 소리를 줄여 긴장감을 유발하는 그의 연주에서 노련함이 돋보였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시작되자, 하나의 선율 안에서 자유자재로 색채를 변경해가며 어둠과 밝음을 넘나드는 연주력이 두드러졌다. 정경화의 날카로운 음색과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은 프랑크 작품의 활기찬 에너지를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힘을 빼고 바이올린 본연의 울림을 키우며 응축된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의 연주는 청중의 환호와 기립박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날 정경화의 연주가 최고 전성기에 버금갈 정도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두 개의 음을 동시에 짚는 중음 주법이 등장하는 구간이나 고음역에서 선율을 이어가는 구간에서 음정이 흔들렸고, 활이 현에 제대로 붙지 못하면서 소리가 미끄러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기교가 사라진 자리에 한층 더 깊어진 표현력과 음악을 대하는 여유로움이 채워져 있었다.

그는 한때 하루에 11시간 이상 연습하는 ‘완벽주의자’로 불렸다. 일흔다섯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매력을 갖게 됐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5년간 바이올린을 놓았다가 재기한 그의 소리를 두고 “전성기에도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음색(일본 음악평론가 와타나베 가츠히코)”이란 찬사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