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챗GPT와 언론의 동행
1990년의 일이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 쏟아지는 포탄 소리를 배경 삼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서 있는 이들을 봤다. 걸프전에 목숨을 걸고 달려간 종군기자들이었다. TV 뉴스를 밤새 마주하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장면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봤던 그 어떤 영상도 그때만큼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자가 되기로.

기자가 된 10여 년간 그런 드라마틱한 사건은 다행히(?)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다. 유년기의 사명감은 날로 줄었다. 대신 언론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신경 쓸 일도 없었을 세상사에 호기심을 가져야 했고, 인터뷰라도 하나 잡히면 그 사람의 과거 발자취와 최근 일거수일투족까지 깨알같이 알아야 했다. 하나의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과연 이 직업을 택했을까. 여러 번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간, 동시대의 어떤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소한 즐거움은 변함이 없었다.

좋은 기자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누구보다 ‘먼저 알리는’ 일이라고 배웠으니까. 멋진 질문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답을 내놓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토요칼럼] 챗GPT와 언론의 동행
업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언론만큼 큰 변화를 겪은 곳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뉴스를 검색할 수 있게 됐고, 스마트폰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뉴스를 쏟아낸다. 기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주는 특종의 유효기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아졌다. 예쁘게 포장된 뉴미디어가 주목받자 아침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구석기의 무엇처럼 여겨지게 됐다. 속보와 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기성 언론에 이런 기술의 진보는 한때 커다란 슬픔과도 같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뉴스 소비자들은 최대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 우리에게 채찍처럼 다가왔다.

요즘 기자들은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쪼개고 쪼개 가상공간의 시간에 맞춰 산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화를 걸고 사람을 만나러 뛰어다니는 대신 검색 엔진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기대는 일이 잦아졌다. 몇 번의 메시지와 이메일만으로도 기사 몇 편은 쓸 수 있고, 외국어에 능통한 통번역기가 비서처럼 옆에 있으니 언론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했달까. 변화의 파도를 잘 잡아탄 이들에겐 길고 지루했던 취재 시간이 하루에서 몇 시간으로, 몇 시간에서 몇 분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요령을 익혔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와도 좀처럼 놀랄 일도 아니라는 자신감 넘치는 냉소가 어쩌면 그 진화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냉소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게 등장했으니, 챗GPT다. 인간의 언어를 그럴듯하게 구사하는 인공지능(AI) 챗GPT는 세상에 나온 지 2개월 만에 1억 명이 가입했다. 틱톡(9개월), 인스타그램(30개월), 구글번역기(78개월) 등의 달성 시간을 압도적으로 단축했단다. AI가 등장한 건 수십 년이 됐지만 챗GPT가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AI가 구현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라 여겨지던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에도 몇 초 만에 세상에 널려 있는 정보를 수집해 답을 내놓는 앱이라니. 게다가 뛰어난 문법으로 바로 글을 작성하는 탁월한 이 언어형 AI는 그럴듯한 소설도 쓰고, 시도 쓴다. 사람들은 흥분한다. 챗GPT를 써본 후기부터 챗GPT의 한계를 파악해 안도했다는 글, 챗GPT가 바꿀 사회 각 분야의 예측까지 연일 쏟아져 나온다. 그중엔 챗GPT에 기사와 칼럼을 쓰게 해봤다는 유치한 체험기도 있다.

챗GPT의 등장은 언론과 지식산업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과격한 전망도 있다. 미디어와 법조계, 교육계 모두 챗GPT 시대에 어떻게 인간의 일자리를 방어하고 업무를 재편할지 고민한다. AI는 점점 진화할 테고, 분명 산업을 흔들 것이다. 이 시점에 우리가 생각할 건 따로 있다. AI는 인간이 아니라는 명제다. 자동차가 그랬듯, 컴퓨터가 그랬듯 AI도 그저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언론은 AI를 분석하는 대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떤 대체불가능한 질문’을 할 것인가,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를 생각할 때다.

챗GPT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나는 안도했다. 맨 처음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그때가 떠올라서다. 취재 과정에서 번거롭고 귀찮았던 일들을 대신할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부턴 오로지 혁신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 그리고 (AI가 아직까진 따라 하지 못하는) 문장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AI가 아직 모르는 ‘지금’을 기록하는 일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