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졸지에 ‘계륵’ 취급을 받으면서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세입자)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세입자가 집주인을 면접하는가 하면 집주인이 전세금 대출 이자를 지원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전세를 피해 차라리 월 100만원이 넘는 고액 월셋집에 살겠다는 세입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19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깡통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우려로 집주인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대인에게 전세를 놓으려는 이유, 연봉 등 경제력, 전세 만기 시 보증금 조달 계획과 의지 등을 면접하고자 한다’는 세입자의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대출이자를 월세처럼 지급하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해주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전세 대신 고액 월세를 찾는 세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작년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 9만9379건 가운데 36.2%인 3만6034건이 100만원 이상 고액 월세였다. 2021년(2만7491건)에 비해 31.0% 불어난 수치다.

1000만원을 웃도는 초고가 월세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높은 아파트는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전용면적 162㎡였다. 지난달 17일 보증금 5억원, 월세 2000만원에 세입자를 맞았다. 서초구 리더스빌 전용 214㎡는 지난달 12일 보증금 없이 월세 1110만원에 계약됐다.

잇단 금리 인상과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커지면서 전세 수요가 월세 수요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집값 하락에 관망세를 나타내고 있는 일부 매매 수요자도 월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커졌고, 최근 전세 보증금 사기 피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임차인이 급증했다”며 “집값 하락기에는 이 같은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