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약 4~5시간을 달리면 축산기업 로마니 패스토랄의 ‘윈디 스테이션’ 목장이 나온다. 로마니는 이 농장에서 소들이 물을 마시는 200여 개 웅덩이 점검 인력을 최근 감축했다. 3명의 직원이 이틀간 목장 전체를 돌아다녀야 하던 작업을 드론과 각종 센서를 활용해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웅덩이에 가지 않고도 물의 양과 영양도를 점검한 결과를 관제탑에서 파악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식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가로지르는 니우어마스강에는 수상 목장 ‘플로팅 팜’이 있다. 한강의 세빛섬과 같은 형태의 건축물에선 젖소 40마리가 자란다. 가축을 사육할 토지가 부족해질 경우에 대비해 강 위에서 소를 키우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 농업 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술 혁신의 모습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인한 농산물 가격 급등 등에 따라 식량이 ‘제2의 석유’로 부각되면서 농업 강국 간 첨단기술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율주행 장갑차가 소 몰고…로봇이 비료 줘…강 위엔 젖소목장

드론으로 소 품종까지 파악

호주 축산업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물 공급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가뭄이 지속돼 물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로마니는 물탱크 수위를 모니터링하고 강우량과 토양 수분 등의 데이터를 파악해 최적의 물 공급량을 찾는다. 대릴 하이드키 호주축산공사 기술혁신매니저는 “목장 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목장주가 늘고 있다”며 “평균 1년 안에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무인 드론을 통해서는 목초지 분포를 점검하고, 소의 개체 수를 품종별로 파악한다. 자율주행 장갑차도 목장에 도입됐다. 미국의 군사로봇 개발업체 HDT가 개발한 ‘울프’다. 이 장비를 목장에 활용하면 울퉁불퉁한 목장 내 지형을 넘어다니며 순찰하고, 무거운 장비를 운반할 수 있다.

세계 농축산업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농기계업체 존디어는 지난달 ‘CES 2023’ 개막식에서 논밭에 스스로 비료를 뿌리는 로봇 비료살포기 ‘이그젝트샷’을 선보였다. 존 메이 존디어 최고경영자(CEO)는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씨앗이 심어진 곳을 식별해 정확한 위치에 비료를 뿌려준다”며 “비료 사용량의 60%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에 목장 띄워…로봇으로 키위 수확

네덜란드 플로팅 팜은 3층에서 젖소를 키우고, 2층에는 착유한 우유를 보관한다. 1층은 치즈 숙성고로 쓴다. 2012년 실험 프로젝트로 시작된 이 농장은 2019년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젖소에게 주는 사료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자동으로 공급하고, 기계로 배설물을 수거해 강의 오염을 막는다. 목장을 운영하는 페터르 판 빙거든 대표는 “플로팅 팜은 각종 농업 신기술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대표 키위 생산·판매업체인 제스프리는 올해 수확 로봇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뉴질랜드 와이카토대가 개발한 이 로봇은 나무 사이를 저속 주행하며 과일을 쓸어 담는다. 이보라 KOTRA 오클랜드무역관 과장은 “뉴질랜드 최대 농업박람회인 필데이즈에서도 자동수확 로봇이 큰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뉴질랜드 북부의 캔터베리 목장에선 양 1만 마리, 소 600마리, 닭 400마리에 전자태그를 부착했다. 무선주파수를 활용해 동물을 식별하고 위치를 추적하며 다양한 건강상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식량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세계 시장이 연결되면서 농업 강국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향후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면 글로벌 패권 경쟁은 석유에서 식량 공급망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한국도 농업을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오클랜드=강진규/로테르담=김소현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