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 강화…국제사회 北도발 대응 동력 약화
[우크라전쟁 1년] ⑥ 지정학적 단층선 놓인 한국에도 부담 커져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질서의 신(新)냉전 구도 강화는 한반도의 외교적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단층선'에 놓인 한반도에서도 이른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흐름이 나타났다.

북한은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에 밀착하며 국제정세 변화를 핵 고도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나섰고, 한국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동시에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한국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커지고 있다.

◇ 신냉전이 北에 열어준 '틈새 공간'…북핵 해결에 난관 가중
가뜩이나 북핵 문제가 미중 전략경쟁의 '종속변수'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다른 악재가 됐다.

한미일과 중국·러시아 등 진영을 달리하는 국가들이 외교적 협력을 통해 북한의 핵 고도화를 제어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 형국이다.

지난해 북한이 8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역대 최다 횟수의 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새로운 제재 결의는 물론 성명조차 전혀 내지 못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추진한 제재 결의나 성명에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 있는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에 북한이 무기를 판매했다는 정황도 공개됐다.

이 경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대북제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에 직접 연루된 셈이 된다.

북한으로선 기존 제재도 느슨해질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제지를 받지 않고 미사일 도발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우크라전쟁 1년] ⑥ 지정학적 단층선 놓인 한국에도 부담 커져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공격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유럽 내 전쟁에 집중되면서 김정은 정권은 ICBM을 포함한 미사일 도발 등 더욱 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통일연구원은 이달 발간한 '한반도 외교안보 환경 변화와 평화·비핵 체제 모색'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형성되는 지정학적 진영 구도를 활용해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에 따른 정치·경제적 곤경 등을 헤쳐나갈 수 있는 전략적 틈새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북한은 이런 국제 환경 변화를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개전 이후 각종 담화를 통해 앞장서 러시아를 옹호하는 것이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친러시아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독립 국가'로 공식 인정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지난달 담화에서 "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북러간 전략적 연대가 질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지만 결국 침공당한 것을 두고 북한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서방과 '가치연대' 강화하는 한국…무기지원 여부 등 이면엔 고심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동맹이자 인권·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서방과 연대를 가속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세계 동맹·파트너 국가들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총력 '스크럼'을 짰다.

한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도 전략물자 수출 차단과 금융제재 등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로부터는 '비우호국가' 중 하나로 지정되는 등 수교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가치를 외교의 전면에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방 진영과 보조는 더 뚜렷해졌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나토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AP4)을 처음으로 초청했다.

이런 흐름은 인도태평양과 유럽·대서양 국가들의 안보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커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크라전쟁 1년] ⑥ 지정학적 단층선 놓인 한국에도 부담 커져
지난달 말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박진 장관을 만나 "북한이 러시아에 로켓과 미사일 등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어떻게 상호 연결돼 있는지를 강조해 보여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서방과 어느 정도나 '행동'을 함께할지는 한국으로서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경제·인도적 지원만 하고 살상 무기의 직접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지만, 군사 지원에 동참해달라는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방한 중 특별강연에서 일부 국가가 교전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지한 정책을 선회한 전례가 있다면서 "한국이 군사적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공개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국산 무기를 대거 구매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간접 지원한 셈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진영대립 속에서 한국에 요구되는 역할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