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절박함'이 진정한 힘
1월 반도체 수출이 전년보다 40% 줄어들었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반복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마치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와 같은 느낌이다. 중동의 유전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그들의 국가 경영이 어렵듯이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 우리의 모든 경제지표가 우울해진다. 1997년의 외환위기 직전에도 소위 ‘반도체 착시’ 현상이 정확한 정책 판단을 실기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반도체 산업의 성장 과정을 보면 우리는 성공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 것 같다. 삼성의 이병철 선대회장이 병상에서도 차세대 반도체 투자를 독려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특허에 대한 전략적 대비가 거의 돼 있지 않던 1987년, 삼성전자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해 수입 금지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돌파하면서 미국 특허등록 1위 업체로 올라선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우리 반도체 공장 건설은 민간 기업과 정부가 일심동체가 돼 불과 9개월 만에 이뤄냈는데 당시 IBM의 중역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놀란 기억이 새롭다. 반도체 장비 반입 시 기기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진동을 우려해 기흥공장 진입로의 비포장도로를 하룻밤 사이에 완공할 정도로 우리는 빨리 움직였다. 요즘은 반도체 공장 하나를 건설하는 데 8년이 걸린다고 한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그런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일까? 첨단기술 산업체 간 경쟁은 거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쇼트트랙 경기에서 아차 하는 순간에 선두를 빼앗기면 선수는 다시 그 위치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인텔 최고경영자(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반도체 생존 경쟁에서 오로지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파운더리업계의 세계 챔피언이 된 TSMC의 노력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은 1931년생인데 대만의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지켜주는 반도체 파운더리 산업 육성을 위해 미국 TI를 떠나 대만에서 50대 후반에 창업했다. 2015년에 삼성전자가 애플, 퀄컴 등의 주문을 일부 따내자, 반쯤 은퇴한 상태였던 모리스 창이 야전침대를 다시 가져다 놓고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리해 보자면,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불가결한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 성장은 민간, 정부 그리고 국회 모두가 1980년대에 산업을 일으킬 때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야만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