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은 첩보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가짜 일정표를 배포하며 철통 보안을 유지했고 대통령 전용기가 아닌 더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전쟁터를 찾은 미국 대통령을 두고 이날 영국 BBC는 “전례가 없는 대담한 순방”이라고 평가했다.

순방 이전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들를 수도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지만 실제 방문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토요일 오후 7시쯤 미국 워싱턴DC에서 질 바이든 여사와 저녁을 먹은 뒤 약 36시간 만에 키이우에서 모습을 깜짝 드러냈다.

키이우 중심부에서 공습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옆에 굳건히 선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 자체는 폴란드에서 있을 어떤 연설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전쟁 지역에 방문한 일은 이례적이다. 앞서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재임 당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지만 이 지역은 모두 미군이 주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짜 일정표를 배포하는 등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동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연일 우크라이나 방문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는데 백악관은 끝까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동이나 바르샤바 이외의 일정은 일절 없다고 부인했다.

키이우 방문은 몇달 전부터 준비됐지만 최종 결정은 극소수 보좌진들을 통해 지난 17일 금요일에야 내려졌다. 백악관 공식 일정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동부 시간 기준으로 19일 일요일 오후 7시에 바르샤바로 떠난다고 적혀있었지만 사실 이날 새벽 4시15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떠나고 없었다.

이때 대통령 전용기로 알려진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이 아닌 부통령과 영부인이 주로 이용하는 에어포스투(Air Force two)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기 위함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최측근과 의료진, 보안요원 등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 탑승했고, 두 명의 기자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보안 서약을 했고 도착할 때까지 휴대전화도 쓸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 공항에 내린 뒤 기차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키이우에 도착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떠나기 몇 시간 전에 미국은 러시아에 순방 사실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충돌을 피하고자 알렸다”라고 말했는데 러시아 반응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끝까지 키이우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러시아에 보여주면서도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국 내 유권자들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퍼주기를 한다면서 무조건적인 지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언급하며 “국내에 있는 많은 문제를 방치하고 떠났다”고 비판했다.

조영선 기자 cho0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