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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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는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인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KT&G의 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칼라일코리아를 이끌던 이상현 대표의 플래쉬라이트캐피탈매니지먼트(FCP)가 KT&G에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 분리를 요구하는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오아시스 펀드까지 본격 참전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상륙한 오아시스 펀드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오아시스 펀드는 1.5%가량의 KT&G 지분을 보유 중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 주주 명부에 기재돼 있는 SPV(특수목적회사) 중 하나가 오아시스 펀드가 세운 회사”라고 말했다.

오아시스매니지먼트는 2002년 홍콩에서 설립된 사모펀드다. 세스 피셔가 창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다. 홍콩을 비롯해 도쿄, 오스틴, 케이맨 제도 등 4곳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오아시스매니지먼트의 투자 대상은 ‘전 세계의 다양한 자본 구조’다. 다만, 오아시스는 “아시아 상장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KT&G는 오아시스 펀드의 첫 한국 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아직 서울 사무소가 없긴 하지만 최근 홈페이지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며 “조만간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행동주의 행보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아시스매니지먼트는 2019년 도쿄돔을 운영하는 도쿄돔 코퍼레이션이라는 상장사의 경영 개선을 요구하면서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도쿄돔과 주변 시설을 누가 운영하는지도 모르던 많은 일본인이 오아시스 측 주장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일본 상장사를 강타한 행동주의 물결을 일으킨 곳이 오아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작년 말엔 일본의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인 후지텍과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2월 임시 주총을 요구하면서 사외이사 전원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종이 펄프 업계의 선두 주자인 호쿠에츠, 전력반도체 제조업체인 산켄엘렉트릭, 토목건축의 강자인 하자마 안도 건설, 130년 전통의 미쓰비시 로지스틱스 등이 오아시스 펀드의 주요 ‘타깃’이다.

전운 고조되는 KT&G 주총 대결

오아시스 펀드까지 가세할 경우 3월 말로 예정된 KT&G 주주총회는 현 경영진과 행동주의 펀드 간 치열한 공방으로 뜨거워질 전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FCP가 지난해 10월 행동 개시 이후에 아직 이렇다 할 후속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며 “우군을 모집하는 등 주총에 화력을 집중하기 위한 침묵일 수도 있고, 마땅히 공세를 취할 만한 취약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일각에선 KT&G는 SM과는 달리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SM만 해도 이수만 회장과 관련한 경영상의 실책과 탐욕이 논란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지분 1%만으로도 경영진을 흔들 수 있던 배경이다. 하지만 KT&G는 소유 구조가 분산된 등 지배구조가 안정적인 데다 필립모리스가 장악한 전자담배 시장에서 글로벌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미래 사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KT&G는 지난달 26일 기업설명회를 통해 3조9000억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FCP측의 대규모 배당 요구에 ‘투자’로 응수한 셈이다. 필립모리스와의 새로운 제휴 전략도 발표했다. ‘적과의 동침’으로 글로벌 전자 담배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업설명회에서 KT&G 경영진은 FCP측의 핵심 요구 사항인 한국인삼공사의 인적분할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KT&G 경영진, 컨설팅료만 260억 지출

정반대의 분석도 나온다. KT&G의 주가가 오랫동안 ‘저공비행’하는 등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동주의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말 기준 KT&G의 소액 주주 비율은 65.3%에 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도 국민이 납부한 연금이 재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가치 제고는 KT&G 경영진의 주요 책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KT&G 주가는 2016년 13만8000원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FCP의 주주 제안 이후 한때 10만원을 찍기도 했지만, 지난달 26일 경영진의 기업설명회 이후 9만원 밑으로 주저앉았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KT&G 경영진도 주총 대결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UBS 등에 따르면 KT&G가 지난해 4분기에 경영 컨설팅 명목으로 골드만삭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딜로이트, 김앤장 등에 지급한 수수료만 약 260억원에 달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