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 루닛 대표가 인공지능(AI) 기반 영상분석 솔루션을 소개하고 있다. 이솔 기자
서범석 루닛 대표가 인공지능(AI) 기반 영상분석 솔루션을 소개하고 있다. 이솔 기자
의료 분야에서 영상분석 인공지능(AI)의 주 무대는 질병 진단이다. AI가 자기공명영상(MRI),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해 암이나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는지 판독해낸다. 글로벌 AI 진단업계가 겨냥한 시장이다. 루닛은 AI 영상분석의 궁극적 쓰임새를 진단이 아니라 치료 영역에서 찾고 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AI의 영상분석 능력이 항암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설을 하나씩 입증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신약 개발사들은 물론 AI 진단업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주장”이라고 했다.

바이오마커 판독해 항암 치료 예측

서범석 루닛 대표 "AI로 질병 진단 넘어 항암제 개발 도울 것"
루닛이 세계적 헬스케어 업체인 미국 가던트헬스와 공동 개발해 최근 내놓은 ‘가던트360 티슈넥스트’는 가설 입증의 첫걸음이다. 이 제품은 암 환자의 암세포 조직을 분석해 특정 단백질(PD-L1)의 발현 정도를 판독한다. 발현율에 따라 면역항암제의 효과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현 정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가던트360 티슈넥스트에는 루닛이 개발한 AI 병리분석 솔루션 ‘루닛 스코프 PD-L1’이 적용됐다. 면역 조직을 염색해 발현 정도를 파악하는 기존 방식보다 검출률이 20% 높다. 올초 미국에 출시했다. 서 대표는 “올해부터 루닛 스코프 사업 매출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에는 루닛 스코프를 연구개발(R&D)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루닛 스코프를 활용해 PD-L1 발현율을 확인하거나 AI 기반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를 찾아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한다. 복잡한 화합물의 구조를 예측하고, 최적의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기존 의료 AI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서 대표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 한 곳이 항암제 개발에 루닛 스코프를 테스트해보고 있다”며 “이르면 상반기 내에 솔루션 공급 정식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독 대상도 늘려간다. 현재는 PD-L1 발현율만 확인하지만, 유방암 환자를 세분화할 수 있는 사람상피세포 성장인자수용체2(HER2), 에스트로겐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수용체(PR) 발현도 분석할 계획이다. 이들은 유방암 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 대표적 바이오마커다. 서 대표는 “루닛이 자체 발굴하는 디지털 바이오마커도 있다”고 했다.

유방암·폐암 진단 해외 사업 속도

유방암과 폐암을 진단하는 ‘루닛 인사이트’의 해외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낸다. 루닛은 후지필름, 필립스, 제너럴일렉트릭(GE)헬스케어 등 글로벌 영상 장비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이들 장비에 루닛 인사이트 솔루션을 적용해 매출을 낸다. 지난해 총 139억원의 매출 가운데 해외 비중이 79.3%에 달했다. 서 대표는 “후지필름을 앞세워 일본 시장에서 크게 성장했다”며 “올해는 미국 호주 등에서도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루닛은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약 280억원으로 잡고 있다.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주요국 정부가 추진하는 검진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지난해 말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州) 정부가 유방암 검진 사업에 루닛 인사이트를 낙점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 대표는 “기업과 정부 간 거래(B2G)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보건소, 군 병원 등 공공 분야 진출을 모색할 계획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