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연설 대결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약 1000㎞의 거리를 두고 날을 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며 ‘핵 위협’ 카드를 또 꺼내 들었다.

푸틴, 105분간 격정 연설 “다 서방 탓”

푸틴 대통령은 이날 1시간45분 동안 국정연설을 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은 서방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의회에서 한 연설 중 최장 시간이다.

그는 “러시아는 서방과 건설적인 대화를 할 의지가 있었고, 전쟁을 막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서방이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를 선동해 전쟁을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는 서방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 대부분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타트는 양국의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줄이자는 협정이다. 단 탈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한다면 러시아도 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 중이고, 전면적인 핵무기 시험을 고려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게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다. 그는 또 러시아 핵전력의 91.3%가 최신 시스템으로 무장했다고도 주장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카네기센터 분석가는 “뉴스타트 참여 중단은 서방과의 관계 회복을 포기하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적대적 신호”라고 우려했다. 뉴스타트가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 핵 보유국인 러시아의 상황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어서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뉴스타트를 근거로 사찰을 요구하며 러시아의 핵 시설을 파고들길 원한다”고 했다.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핵 문제를 또다시 들고나오며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 선언은 매우 무책임하고 유감스러운 처사”라고 비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푸틴 대통령이 평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어 보이며, 오히려 전쟁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푸틴 대통령은 “장거리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러시아는 그 위협을 더 멀리 돌려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우크라이나가 전날인 20일 미국 등과 장거리 무기 지원을 놓고 협의 중이라는 발표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의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인 반면 러시아는 올 2분기 중 목표치인 4%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폴란드서 ‘맞불’ 연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대통령궁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대통령궁 정원에서 연설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다른 사람(푸틴 대통령)과 ‘말의 경쟁’을 벌이진 않는다”고 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러시아가 벌인 명분 없는 전쟁이 1년을 맞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더 큰 맥락을 짚은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우리가 국제 질서, 미국과 NATO의 역할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면 1년이 되는 현재엔 우리의 단결과 헌신, 의지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법 위반임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를 도와 세계질서를 수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는 의미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이고운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