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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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깜깜이 시장’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본인이 피해를 보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증권사들이 대차거래 중개 영업을 하면서 개인에게만 유독 낮은 수수료(이자)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21일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증권사들이 정보 투명성이 없는 대차거래 시장에서 개인 보유 주식을 ‘배불리기’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무줄 수수료에 개미만 눈물

[단독] '호갱 된 개미' 15兆 주식 빌려주고 쥐꼬리 이자…증권사 배만 불려
대차거래란 당사자 간 합의로 주식을 대여·차입하는 장외거래다. 외국인과 기관, 전문투자자 요건을 갖춘 일부 개인이 이용한다. 대차거래를 통해 빌린 주식은 차입금 담보용 등으로도 활용되지만 대부분은 주식을 공매도하는 데 쓰인다.

공매도를 하려는 헤지펀드 등은 일일이 주식을 차입하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증권사의 중개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때 증권사들은 통상 개인 고객이 보유한 주식을 대차거래 중개에 활용한다. 수수료 수익을 얻고자 주식대여 서비스에 가입한 개인이 보유한 주식이 대상이다. 이 서비스에 가입한 개인 보유 주식 전체를 ‘리테일풀’이라고 부른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7개 대형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NH투자·KB·키움·신한투자)의 전체 리테일풀 약정 금액은 15조1299억원(지난해 11월 말 기준)에 달한다. 증권사들은 리테일풀에서 주식을 구하지 못할 경우 기관·외국인 고객에게서 주식을 빌린다.

국내 7개 대형 증권사는 지난해 6월부터 6개월간 공매도 잔액 상위 10개 종목을 빌릴 때 리테일풀에서 1억3655만 주, 기관·외국인으로부터 5196만 주를 차입했다. 개인에게서 빌린 주식이 160% 넘게 많았다.

문제는 같은 주식을 빌리면서 증권사가 개인과 기관·외국인에게 다른 수수료(이자)를 지급한다는 점이다. 대형 증권사는 기관·외국인에게 평균 연 2.8%(공매도 잔액 상위 10개 종목 기준) 수수료를 줬다. 반면 개인에게는 평균 연 1.0% 수수료를 지급했다.

종목별로 보면 격차가 더 크다. HLB생명과학 주식을 빌릴 때 기관·외국인에겐 연 9.2%(가중평균 기준) 수수료를 지급했지만 개인에게는 연 3.9%만 지급했다. 대한전선 주식을 빌릴 때는 기관·외국인에게 연 6.4%, 개인에게 연 3.5%를 줬다. 씨젠의 경우도 기관·외국인에겐 연 4.4%, 개인에겐 연 1.9%를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했다. 기관·외국인 이자와 개인 이자의 차이(1.8%포인트)에 전체 리테일풀 약정 금액(15조1299억원)을 곱해 단순 추정해도 개인은 연 2723억원의 기대수익을 날렸다는 추산이 나온다.

개미 돈으로 배불리는 증권사들

한 증시 전문가는 “증권사는 리테일풀에서 못 구한 주식을 기관으로부터 빌려 일정 정도는 기관에 비싼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증권사들이 대차 수수료가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개인에게 지나치게 적은 이자를 준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기관마다 다른 수수료로 주식을 빌려주는 문제도 드러났다. 예를 들어 A운용사는 지난해 6월 14일 대한전선 2640주를 연 18.0% 수수료에 빌렸다. 같은 날 B운용사는 대한전선 2653주를 연 6.0% 수수료에 차입했다.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거래도 많았다. 해당 기간 증권사가 주식을 대여해준 1만211건 가운데 수수료율이 연 0%인 거래가 101건에 달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와 운용사 간 친소관계, 영업 관계 등이 수수료율에 영향을 미친다”며 “예를 들어 비즈니스적으로 관계가 깊은 운용사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대차거래에 활용하는 주식의 상당수가 개인 소유 주식이라는 점이다. 가장 높은 수수료율에 주식을 대여해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개인에게 분배해야 하지만 증권사들이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수수료율을 결정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자본시장법상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투자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

외국은 대차거래 플랫폼 활성화

대차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차시장이 현재 ‘깜깜이’ 상태이기 때문에 정보 비대칭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대차시장 관련 공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유관기관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 대차시장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퀼렌드(Equilend)’, ‘브로드릿지(Broadridge)’ 등 민간 대차계약 플랫폼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퀼렌드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거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플랫폼이다. 대차거래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 원리가 작동하면서 공정한 가격발견이 이뤄진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