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앞으로 생길 손실에 대비해 쌓아두는 대손충당금을 더 늘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은행 수익을 대손충당금 확보 등 건전성을 관리하는 데 써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다. 충당금을 늘리면 배당 등 주주환원율 축소가 불가피하다. 가계대출 감소로 올해 은행 실적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충당금 부담까지 늘어나면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사의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더 쌓기도, 놔두기도…은행 '충당금 딜레마'

○충당금 이미 역대 최대인데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새로 적립한 대손충당금은 2조8259억원으로 전년(1조6015억원)보다 76.4% 증가했다. 농협은행이 6706억원을 전입해 2021년(3015억원) 대비 신규 적립액 증가율이 122.4%로 가장 컸다. 이어 하나(117.3%) 우리(114.3%) 신한(79.3%) 국민은행(22.9%) 순이었다.

새로 쌓는 충당금이 늘면서 대손충당금 총잔액도 증가했다. 5대 은행의 대손충당금 총액은 작년 말 기준 8조3297억원에 달했다. 2021년(6조9775억원)보다 19.3% 늘었다.

대출 부실이 발생했을 때 금융사의 손실 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고정이하여신(NPL) 커버리지 비율도 개선됐다. NPL 커버리지 비율은 충당금 적립액을 부실채권으로 나눈 값이다. 5대 은행의 작년 말 기준 평균 NPL 커버리지 비율은 233.3%로 역대 최고치다. 2021년(189.5%)과 비교해 40% 넘게 올랐다. 금융권에선 NPL 커버리지 비율이 150%를 넘기면 위기 대응 능력이 양호한 것으로 판단한다.

당국은 올해 2분기 은행에 충당금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5대 은행의 경우 은행당 3000억원 이상의 추가 준비금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주요 은행 모두 전례 없는 규모의 충당금을 적립한 상황”이라며 “통상 연간 충당금 전입액은 당국과 협의한 뒤 결정하는데 당국이 작년에 쌓은 충당금이 이제 와서 부족하다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금융지주 배당 줄어드나

당국의 은행 충당금 적립 압박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제시했던 금융지주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지주의 주식 가치는 자회사인 은행 보유 자산의 30~40% 수준에 그친다. 금융지주는 주식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준비했다. 당국도 배당에 대해 “금융사의 자율적인 결정”이라며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재 성격’을 강조하고, 성과급 ‘돈잔치’를 비판하는 등 금융업권 전반에 압박을 강화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국은 “주주 환원보다 금융 소비자에 대한 공적 책임을 먼저 준수해야 한다”며 충당금 등 자본건전성 우선 방침을 밝혔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평균 배당 성향(순이익 중 배당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25.5%로 2021년(25.7%)보다 0.2%포인트 줄었다. 배당 등 주주가치 환원 기대가 사라지자 4대 금융지주 주가도 지난달 고점 대비 평균 10% 넘게 떨어졌다. 한 금융지주 재무담당 임원은 “대손충당금 확대를 ‘배당 축소 신호’로 받아들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