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경쟁의 본질은 관치(官治) 철폐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KT 차기 대표 선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어이없는 광경과 주주가치 훼손에 뿔난 외국인 투자자의 목소리다. “3년만 하면 됐지, 왜 더 해?” 이게 권력의 의중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KT 대표 공모에 30명이 넘는 후보가 지원했다. 면면을 보면 개그가 따로 없다. 정부가 최고경영자(CEO)를 낙점한다고 일반이 인식하는 공기업·공공기관처럼 후보들이 어디에 줄을 대려 할지 자명하다. KT 포스코 등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라면 제도부터 고치는 게 순서일 것이다. 회사법의 전제가 소유분산기업이고 CEO 선임은 주주의 몫이란 관점에서 보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스럽다. 21세기, 그것도 4분의 1이 다 돼가는 시점에 이런 장면이 한국에서 연출된다는 것 자체가 슬프다.

은행과 통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과점체제가 문제라지만 해당 업종은 난방비 유탄을 맞고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은행·통신사업자가 과점인 탓에 경쟁을 하지 않아 문제인 것인가. 그들이 담합을 하고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 될 텐데, 그렇다면 공정위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게 아니라면 물음은 또 이어진다. 인사와 가격을 누가 좌지우지하는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은행이 자유롭게 경쟁과 혁신을 할 수 있는가. 통신 가격을 누가 정하는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아가지 않고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가.

독점보다, 완전경쟁보다 그 중간인 과점에서 치열한 혁신이 일어난다는 실증연구도 많다. ‘역(逆) 유(U)자 곡선’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출현해도 파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제4 통신사업자가 나온들 시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제로인 이유는 관치 환경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완전경쟁이 설사 실현된들 수많은 경쟁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정부가 정하는 가격의 수용자가 되고 말 게 분명하다. 더구나 정부가 은행과 통신을 ‘공공재’로 인식하는데 누가 혁신을 하려 들겠나.

은행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이자수익에 매달려 비(非)이자수익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 통신사업자가 앉아서 장사하다 혁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국내 은행의 비이자수익 비중은 부끄러울 정도다. 5세대(5G) 통신을 한들 빅테크의 영향력에 비하면 통신의 위상은 초라하다. 하지만 자신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희생양 찾기로 질주하는 ‘정의(正義) 중독증’으론 해결될 게 하나도 없다. 비이자수익 개척을 막는 금산분리다 뭐다 온갖 규제는 누가 만들었나. 통신사업자에서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변신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유능한 CEO를 그만두라고 압박을 가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자유시장경제, 민간 주도란 말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관치의 폐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왜 어떤 업종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나오고, 왜 어떤 업종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안 나오는가를 생각해 보라. 은행과 통신에서 글로벌 기업이 있는가. 제조업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있는데 왜 서비스업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없는가. 관치가 지배하는 업종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나오려야 나올 수 없다.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신·구자본론>에서 21세기 경제공간으로 ‘실체경제’ ‘국경 없는 경제’ ‘사이버 경제’ ‘멀티플(배율) 경제’를 말했다. 실체경제, 그것도 단일 업종의 경쟁만 봐선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글로벌 경제의 강자, 사이버 경제를 주름잡는 빅테크, 시가총액에서 기존 기업의 몇 배로 치고 올라가는 멀티플 경제를 만드는 기업으로부터의 경쟁을 다 생각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경쟁제한성’은 과대평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소비자 후생 측면의 ‘효율성’은 과소평가해 카카오모빌리티 호출 서비스(배차 알고리즘)에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때린 공정위 수준으론 제대로 된 경쟁도, 글로벌 플랫폼 출현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신성장 4.0’을 내놔도 시장은 관 주도 경로의존성의 연장으로 여길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경제만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를 보지 못하는 정책은 백전백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