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 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아
해 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구두끈을 매는 시간만큼 잠시
멈추어 선다.
행인들의 귀는 점점 맑아지고
지난밤에 들리던 소리에
생각이 미쳐
앞자리에 앉은 계장 이름도
버스 스톱도 급행번호도
잊어버릴 때, 잊어버릴 때,
분배된 해를 순금의 씨앗처럼 주둥이 주둥이에 물고
일제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
지난밤에 들리던 석탄의 변성(變成) 소리와
아침의 숲의 관련 속에
비로소 눈을 뜬 새들이 날아오르는
조용한 동작 가운데
행인들은 저마다 불씨를 분다.
행인들의 순수는 눈 내린 숲속으로 빨려가고
숲의 순수는 행인에게로 오는
이전(移轉)의 순간,
다 잊어버릴 때, 다만 기다려질 때,
아득한 세계가 운반되는
은빛 새들의 무수한 비상 가운데
겨울 아침으로 밝아가는 불씨를 분다.


* 오탁번 :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2023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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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떨어질 뻔한 오탁번 시인
그해 신춘문예에 떨어질 뻔했던 사연

요즘도 신춘문예 때만 되면 문학청년들의 열병이 도집니다. 56년 전 오탁번 시인은 더 그랬지요.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는 그의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1967년)입니다. 당시 얘기를 들어볼까요.

애인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그때까지는 대부분의 신춘문예 응모 마감일이 11월 말이었는데, 중앙일보만 다른 신문보다 열흘 정도 늦은 12월 10일이었습니다. 그는 한 해 전 신춘문예 시 부문에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떨어지고, 대신 동화가 동아일보에 당선된 상태였지요. 그런 뒤 소설 습작에 진력하고 있었습니다. 시는 웬만큼 쓴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세상이 몰라보는 시는 그만 작파해버리고 서사문학의 매력에 빠져서 죽기 살기로 매진하던 중이었죠.

한편으로는 고려대학교의 ‘고대신문’ 학생기자로 활약하던 중이었습니다. 신춘문예 응모 철이 다가오자 그는 소설을 너덧 편 완성해 신문사마다 일찌감치 투고했어요. 그러고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 좋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는 며칠 사이에 시 세 편을 썼죠. 1년도 넘게 절교했던 애인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편이 1967년 중앙일보에 당선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였습니다. 이 작품은 난해하고 상징적인 시가 많이 발표되던 시단에서 김광균의 ‘와사등’ 이후 참신한 감각을 보여준 시로 큰 호평을 받았지요.

당시 심사위원은 조지훈, 박남수, 김종길 선생 세 분이었습니다. 응모할 때 모조리 가명을 썼는데, 최종심 때 원고지에 ‘고대신문’ 마크가 찍혀 있는 걸 보고 김종길 선생이 한마디 하셨다고 해요. “아무래도 고대 영문과 오 아무개 작품 같은데 우리 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당선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박남수 선생이 “작품만 좋으면 됐지 그게 무슨 문제냐” 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해 세밑 한국시인협회 회식 자리에서 김종길 선생이 그 비화를 들려줬는데, 그는 짐짓 웃으면서 옆자리 시인에게 살짝 말했죠. “어휴! 하마터면 낙선할 뻔했네!”

그는 “앞으로도 선생께서 처음 공개하는 비화인 양 제 등단 뒷이야기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또 하시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씀 들으면서 나는 또 ‘어휴! 하마터면 시인 못 될 뻔했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겠지, 아마도.”

‘신춘문예 3관왕’에 ‘정지용 1호 석사’

그랬던 오탁번 시인이 지난 14일 8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복 2년 전인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죠.

대학 재학 중이던 1966년 동화 ‘철이와 아버지’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으로도 화제를 모았죠.

그는 ‘월북 시인’으로 불렸던 정지용이 해금되기 전인 1971년, 정지용 시에 대한 첫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아 학계와 시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훗날 “잡혀갈 각오로 논문을 썼다”고 회고했지요.

고려대에서 정년퇴직한 뒤인 2003년에는 부인 김은자 전 한림대 교수와 함께 제천에 있는 모교 백운초등학교의 폐교된 애련분교에 원서문학관을 세웠습니다. ‘원서(遠西)’는 ‘먼 서쪽’을 의미하는 고향 땅이자 백운의 옛 이름이라고 해요.

그가 여생을 보낸 곳도 여기이고, 문학적 자양분을 받고 자란 곳도 여기여서 그런지, 오늘따라 그의 빈자리가 새삼 더 크게 보이는군요.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던 그 숲속 빈터에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라는 시를 올려놓아 봅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