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SM '가짜 주주'들의 잔치
SM엔터테인먼트 분쟁은 흥미진진하다. K팝 창시자의 탐욕과 추락, 처조카 대표의 배신과 폭로, 이를 배후 조종하는 신진 액티비스트,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서 SM엔터 경영권을 쥐려는 ‘엔터 공룡’의 전쟁까지…한 편의 드라마다. 누구도 결말을 예상하기 힘든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

재밌기만 한 게 아니다. 강력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가진 대주주의 무책임·불투명·무배당 경영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소액주주의 집단 경고다.

SM엔터 주가는 오르고 주주는 열광한다. 한국에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시작됐다는 기대가 솟구친다. 그러나 SM엔터 분쟁을 들여다보면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 경영권을 가르는 주주총회가 ‘가짜 주주’들의 잔치라는 점이다. 주주 의결권이 왜곡된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의결권 없는 SM 新주주

SM엔터 이사회의 반란이 거행된 건 한 달 전쯤이다. 설 연휴를 앞둔 1월 20일, 현 경영진은 기습적으로 ‘이수만 없는 SM엔터’를 선언했다. 대주주인 이수만과 연을 끊고 얼라인파트너스와 손을 잡았다. 임기 만기 두 달을 앞둔 이사회의 반란이었다. 이성수 공동대표는 “이수만(이모부)의 탐욕과 독재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어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매출의 6%를 로열티로 챙긴 이수만의 1인 프로듀싱 체제는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에게도 민감한 이슈였다. 5년 전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이 그랬듯이 멀티프로듀싱 체제는 SM엔터 임직원의 숙원이었다.

이사회의 배신은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 경영진은 플랫폼기업인 카카오를 끌어들이고, 이수만은 경쟁자인 하이브와 손잡았다. SM엔터는 K팝 선구자다. 28년 동안 쌓아온 음악에 대한 막대한 마스터권리(인접권)를 갖고 있다. 애타게 경영권을 원하는 하이브와 카카오 모두 공개매수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이사회 반란 때부터 주가는 급등하고 거래는 급증했다. 올해 주주 손바뀜이 대거 일어났다는 얘기다. 불편한 진실은 ‘이수만 없는 SM엔터’에 베팅한 주주들에겐 SM엔터 경영진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하이브,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작년 말 주주들이 3월 정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진짜 주주권 부여해야

‘SM엔터 드라마’는 글로벌 사모펀드 KKR 출신인 이창환 얼라인 대표의 각본대로 흐르고 있다. 그는 새해 이사회 반란을 예상한 듯 작년 가을부터 ‘큰손’들에게 SM엔터 지분을 사도록 해서 우호지분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작 지분 1% 수준을 가진 얼라인이 SM엔터 경영권의 키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이유다. 얼라인은 ‘알박기’ 특수를 누릴 수 있는 반면 일반 주주권은 침해될 여지가 커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기업이 각자 주총 일정에 맞춰 의결권 기준일을 정한다. 주총 직전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진짜 주주들이 경영진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행동주의가 정착된 미국에서 SM엔터 분쟁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합리적 배당 투자를 늘리기 위해 배당 기준일을 바꾸듯이, 주주자본주의를 위해선 ‘의결권 미스매치 문제’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