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高)물가에 가계 실질소득이 두 분기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지출은 역대 최대 폭으로 상승했고, 세금도 큰 폭으로 증가해 가계 부담을 늘렸다. 경기 둔화가 본격화한 가운데 물가·금리·세금 3중고가 민생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5% 물가 상승에 실질 구매력↓

통장 스쳐가는 월급…고물가에 가구 실질소득 1.1% 줄었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3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464만2000원)보다 4.1% 늘었다. 하지만 물가 영향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1.1%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실질소득이 2.8% 줄어든 데 이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실질소득은 명목소득에서 물가 변동분을 뺀 수치로 가계의 실제 구매력을 보여준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7.5%) 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1년 전보다 4% 넘게 올랐지만, 정작 구매력은 떨어진 것이다.

팍팍한 소득에 비해 지출은 크게 늘었다. 작년 4분기 가계지출은 362만5000원으로 1년 전보다 6.4% 증가했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69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5.9% 늘며 여덟 분기 연속 증가했다.

세금이나 연금, 이자 등 소비활동과 관계없는 지출인 비소비지출도 92만8000원으로 1년 만에 8.1% 늘었다. 여기엔 근로소득세, 사업소득세 등 정기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인 경상조세 증가의 영향이 컸다. 가구당 납부한 경상조세는 19만4000원으로, 전년(17만5000원)보다 10.9% 늘었다. 지난해 근로소득이 7.9%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로소득자의 ‘유리지갑’만 더 얇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57조4000억원으로, 1년 만에 21.6%(10조2000억원) 늘었다.

이자비용 지출액(11만1000원)은 28.9% 증가했다. 가계동향조사 대상에 1인 가구를 포함하면서 기준이 달라진 2006년 이후 최고치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부터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높인 여파가 숫자로 나타났다.

네 가구 중 하나는 ‘적자’

소득보다 지출이 더 늘면서 가계 재정도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가계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총소득-비소비지출)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120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6.6%)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줄었다.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적자가구 비율도 24.8%로 전년 동기 대비 0.4%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가구 네 곳 중 한 곳은 매달 빚을 늘리며 살고 있는 셈이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적자가구 비율은 59.5%에 달했다.

1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2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6.6% 늘었다. 5분위 가구는 1042만7000원으로 2.9% 증가했다. 1분위 소득이 늘며 빈부 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53배로 전년 4분기(5.71배)보다 완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1분위 소득 가운데 39%(46만3000원)가 이전소득이었다.

정원 기재부 복지경제과장은 “저소득층의 소득·분배 지표가 개선됐지만 고물가와 경기 둔화 여파로 개선세가 계속될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