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의 최측근 중 하나인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인민일보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 중 하나인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인민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허리펑 발전개발위원회 주임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수장에 오를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민은행의 권한은 더 강력해지겠지만 독립성은 더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 체계에서 인민은행은 국무원(행정부) 산하 부처 중 하나다.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국가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이 적다는 점에서 자유시장경제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 또 인민은행은 금융 부문의 전반적인 감독 권한도 갖는다.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도 인민은행 소속 기구가 분리돼 나간 조직들이다.

인민은행의 현재 지배구조도 특이하다. 총재와 공산당 위원회 서기(당서기)가 분리돼 있다. 서열 1위는 당서기인 부총재이며, 총재는 당위원회 부서기로 2인자다. 인민은행 당서기 겸 부총재이자 은보감회 주석인 궈수칭이 현재 중국 금융 부문 수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인 이강 총재는 국제 회의 등에서 주로 활약하는 '얼굴 마담' 역할을 해왔다.

소식통은 허리펑이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4명의 국무원 부총리 중 한자리를 차지하는 한편 인민은행 당서기에도 선임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주허신 중신그룹 회장이 인민은행 총재에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허리펑은 시진핑 주석이 1985년부터 2002년까지 푸젠성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최측근으로 꼽힌다. 현재 거시 경제를 총괄하는 발개위 주임을 맡고 있다. 그가 부총리이자 인민은행 당서기를 맡게 되면 인민은행의 정치적 지위와 감독 권한은 강해지겠지만 통화정책 측면에서 자주성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형태의 겸임은 1990년대 이후 처음이다. 중국 3대 지도자인 장쩌민 주석 시절인 1993~1995년 주룽지 당시 부총리가 인민은행 총재 겸 당서기를 맡은 바 있다. 주룽지는 1998~2003년 총리도 지냈다.

허리펑은 현재 시 주석의 경제책사로 불리는 류허 부총리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류 부총리는 금융, 과학기술 및 산업정책을 담당하고 있으며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주임,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주임 등도 겸한다. 2020년 1월 미국과의 1차 무역합의에서도 시 주석을 대신해 서명하는 등 경제 정책을 총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무원 부총리로는 류 부총리 외에 한정 상무부총리(개혁·개발 담당)와 쑨춘란(교육·보건·체육 등), 후춘화(농업·농촌·자원·외국인 투자 등)가 있다. 이들은 모두 물러날 예정이며, 이번 전인대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딩쉐샹과 중앙정치국 위원인 허리펑·류궈중·장궈칭 등이 그 자리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민은행 총재가 유력한 주허신은 상하이재경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교통은행에서 2015년까지 근무했다. 중국은행 부행장, 쓰촨성 부성장을 거쳐 2018~2020년 인민은행 부총재를 지내며 금융안정 부분을 담당했다.

주허신이 2020년부터 회장을 맡은 중신그룹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중앙금융기업 중 하나다. 회장은 장관급이다. 은행, 보험, 증권 등의 다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신증권과 중신젠투증권은 중국 양대 증권사이기도 하다. 주허신은 재임 시절 4대 배드뱅크 중 하나인 화룽자산운용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금융 전문가이긴 하지만 이강 현 총재나 저우샤오촨 전 총재 등 선임자들과 비교하면 국제적 위상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WSJ은 또 중국공산당이 1998~2003년 있었던 중앙금융공작(업무)위원회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조직된 금융공작위원회는 금융정책, 중앙은행과 국유기업 인사 등을 총괄했다. 이 조직을 다시 가동하는 것은 당의 감독권을 일원화하고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의 비서실장인 딩쉐샹이 이 기구를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 주석이 측근들을 금융·경제 부문 요직에 앉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측근들끼리 견제하도록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