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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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열명 규모의 IT기업을 운영하는 김 모 대표. 얼마 전 한 직원이 큰 실수를 저질러 한 소리를 했다. 이 직원은 표정이 안 좋더니만,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실수가 잦은 직원이라 '안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잊고 있다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직원을 대리한다는 노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당해고와 퇴직금 미지급 등을 따지는 전화였다.

김 대표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해고가 아니고 그 직원은 지금 무단결근 중"이라며 "이제 사직 의사를 알았으니 퇴직금 등을 지급하겠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잘못 대응했으면 꼼짝없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가능할 수 있다고 하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무단결근한 직원, 내버려뒀다간 "소송 폭탄"

근로자가 제 발로 나간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직인지 해고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해고로 판명될 경우 사업주에게 상당한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언급된 김 대표는 운이 좋았던 지도 모르겠다. 이와 관련한 최근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은 이달 초, 해고된 버스기사 A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는 버스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기사였다. 그가 두 차례나 무단 결근으로 운행에 차질을 빚자, 회사 관리팀장은 A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가 무시하자 화가 난 팀장은 관리상무와 함께 A를 찾아 버스 키를 직접 회수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말싸움이 벌어졌다. 팀장이 "사표를 쓰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A가 "해고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팀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A는 그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몇개월이 지난 후, 회사에는 A가 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사는 부랴부랴 "복귀하라"며 복귀명령을 통보했지만, A는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그 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주면 복직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며 맞섰다.

하지만 정작 지노위와 중노위는 A의 구제신청을 기각했고, 결국 A는 중노위를 상대로 재판까지 가게 된 것. 결국 홧김에 "사표를 쓰라"고 한 말이 '해고'가 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도 1심과 2심은 중노위의 손을 들어줬다. A가 버스를 운행하지 않고 무례한 언행을 한 것에 팀장이 화를 내다 우발적으로 한 말이라는 판단이다. 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해고는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버스 키를 회수한 것은 노무 수령 거부"라며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도 일방적으로 근로 관계를 종료하는 의사표시"라고 판단했다.

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다는 주장에도 "관리상무를 대동했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3개월간 결근했음에도 회사가 출근하라는 등 아무 독촉을 하지 않은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법원은 "이는 대표이사도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A는 해고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지 않고 출근하지 않은 것"이라며 A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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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가라"는 사업주의 말에 곧바로 나가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직원에 대해서는 '부당해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10월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기소된 중소기업 사장 B에 대한 공판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관련기사: "나가라" 대표 한마디에…기다렸다는 듯 노동청 향한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이 사건에서는 B가 두차례 무단결근 고지 및 근로관계 지속 의사를 확인하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냈는데 직원이 답변하지 않은 점, 오히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한 점이 근거가 됐다.

법원은 사용자의 노무 수령 거부 경위, 노무 수령 거부에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전후 별다른 사정도 없이 나가버린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신입사원을 좀 혼냈더니 도망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다.

'보고 배우라'는 취지로 데려간 고객사 미팅에서 권한을 넘는 발언을 한 신입직원에게 주의 환기 차원에서 한 소리를 했는데, 그길로 연락이 두절돼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이 경우엔 정황상 회사가 해고한 걸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해도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근로계약 관계 존속 문제를 명확하게 해놓지 않았다가는 심각한 법적, 금전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늘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근로자가 구두로 사직의 표시를 하더라도 반드시 사직서나 문자메시지 등 근로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겨둬야 법적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며 "사소한 인사 관련 실수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큰 손실을 입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