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는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일상생활 돼야"
인터뷰이 20명, 독서 좋아해…"도서관 통째로 읽어"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연합뉴스의 [삶] 인터뷰 참여자들은 대체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 독서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책 읽는 것을 즐겼다.

이들은 독서가 일상생활이지, 취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밥 먹고 자는 것이 취미가 아닌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독서가 생각을 깊게 하고,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서 집중력을 높이는데도 독서가 좋다고 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이들은 글을 잘 쓰게 됐다.

읽기, 생각하기, 쓰기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진행한 [삶]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20명이었다.

이들은 인터뷰 순서대로 ▲국민 의사 이시형 ▲전 민노당 대표 권영길 ▲고전 평론가 고미숙 ▲40년 노동운동가 하종강 ▲탁구 감독 현정화 ▲40년 현역 기자 조갑제 ▲스타강사 김미경 ▲탈북 국회의원 태영호 ▲광운대 교수 진중권 ▲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 김종인 ▲전 프로골프 선수 박세리 ▲국제구호 전문가 한비야 ▲전 민주당 의원 금태섭 ▲주사파 대부 김영환 ▲시인 정호승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변호사 김재련 ▲전태일 열사 여동생 전순옥 ▲영원한 재야 장기표 ▲범죄심리 전문가 이수정 ▲시인 나희덕이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본인들도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자신들의 삶이 완전히 기대에 충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되는 인생은 아니라는 게 그들 자신의 대체적인 평가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김영환(59)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온종일 책만 읽다시피 했다.

그는 초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다.

700∼800권 정도 되는 규모였다.

학교 도서관에 읽을 책이 더는 없다고 판단되자 시립 도서관으로 옮겨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설을 많이 봤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역사책뿐 아니라 데카르트 같은 철학책도 찾아 읽었다.

김영환은 "철학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그의 독서력은 대학에 가서도 두드러졌다.

그는 학생운동권의 동기, 선후배들과는 달리 관변 연구기관이 펴낸 북한 서적까지 탐독했다.

김영환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선배들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북한은 거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북한을 빼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면서 "도서관에 있던 관변 단체들의 자료를 열람하다 북한, 소련, 동유럽을 전공하는 연구자들만이 볼 수 있는 자료집을 구해 읽었다"고 했다.

그런 자료에는 레닌과 스탈린, 김일성, 김정일 이름으로 된 글들이 있었다.

그는 주사파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에서 한국 역사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사파의 리더가 김영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반성과 오류수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는 지금 북한의 민주화 혁명에 투신하고 있다.

근래에 김영환은 사회발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고 있다고 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금태섭(55)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가 읽는 책의 80%는 소설이다.

그는 소설책 읽기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금태섭은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에 관한 사회과학인데,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기"라면서 "정치하는 분들은 연극을 열심히 보기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동물의 왕국을 열심히 시청하기도 하는데,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소설뿐 아니라 사회과학 서적도 꾸준히 사서 읽는다.

그는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1년에 한 번씩 통계를 내는데, 나는 많이 구매한 사람의 상위권에 들어가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읽으면서도 쓰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금태섭은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글을 쓰는 데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면서 "젊은 시절 문학청년은 아니었지만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가 중에는 타고난 이야기꾼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면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긴급구호 전문가 한비야(64)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생활이다.

오래전부터 그의 취미 항목에서 독서는 빠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글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1년에 책 100권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고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시작했던 일인데, 습관이 됐다.

한비야는 "100권이면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보이지만 1주일에 2권 정도 읽으면 가능하다"면서 "비행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는 무조건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외 소설, 시집, 세계사 등을 주로 본다.

세계사는 연도의 나열이 아니라 스토리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흥미로운 장르다.

한비야는 독서를 좋아하기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 읽는 아이를 보면 한없이 반갑다.

그는 "버스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데, 어느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마스크 위 그 아이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비야에게 독서는 사고력을 키워주고 자기 생각을 하게 해준다.

책을 쓰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진중권(60) 광운대 교수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같은 책을 읽었다.

김동길 교수의 책도 봤다.

그가 고등학교 때 어느 날 국어 수업 시간에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책상 아래에 몰래 감추고 봤는데,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읽는 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책상 위에 올려놨더니 선생님은 책 제목을 보고는 계속 읽으라고 했다.

그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일반적인 대중 서적은 3시간이면 소화한다.

서론과 목차를 보고, 핵심 부문만 찾아서 읽는다.

숙독하는 것은 논문이다.

한 페이지 읽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는 다수의 책을 썼다.

'미학 오디세이' 등 베스트셀러도 많다.

감각론(감각의 역사)은 2020년 교육부와 학술원이 선정하는 우수학술 도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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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닷컴 대표인 조갑제(77)에게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

먹고 자는 것처럼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책을 많이 읽다 보니 기자가 됐다고 했다.

조갑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다"면서 "신문도 어린 나이에 많이 읽었더니 한자 공부를 하기 전에 한자를 저절로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많이 읽으니 자연스럽게 글 쓰는 것이 좋아졌다"면서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산일보에 합격해서 기자가 됐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 시절에도 읽을거리를 한 보따리씩 싸서 집에 와서는 밤늦게까지 읽곤 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고,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많이 읽고, 반복해서 확인하고, 정확하게 쓰는 것을 중시한다.

글을 쓰는데 가능하면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그가 특종기자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이런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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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73)은 청소년기에 '현대문학' 같은 문예지를 많이 읽었다.

문학전집 같은 책도 반복해서 봤다.

하지만 정호승은 20대에 다방면의 책을 열심히 읽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청소년기에는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학 시절에는 다양한 책을 구해 읽을 수 있는 여건이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고 싶다고 했다.

읽은 내용을 독서록으로 정리할 것이라고도 했다.

정호승은 "시인이라고 해서 시집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복잡한 자본주의 시대에 인문학적 소양의 토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서 노트를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읽은 책에 대한 자기의 생각, 중요한 구절을 정리해 놓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가 나이 들어서 관심을 두는 책은 종교 관련 서적이다.

정호승은 "불교나 기독교, 천주교 등 영성을 일깨워주는 책들을 찾아서 읽는다"면서 "종교의 학문적 내용보다는 수행자들이 쓴 책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스타강사 김미경(57)이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쯤이다.

대학 시절에는 독서에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 그에게 독서는 생명줄이다.

한 달에 평균 4권 정도는 읽는다.

김미경은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강사 생활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사람은 지속해서 자극받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게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뭔가 인생이 안 풀릴 때도 공부에 몰입하고, 뭔가 일이 모두 멈췄을 때도 책을 읽었다"면서 "책 한 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책 읽기를 통해 많은 책을 썼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리부트' 등 20여 권의 책을 펴냈고 그중 베스트셀러도 적잖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변호인 김재련(50)은 어린 시절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시골 마을이어서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도 별로 없었기에 책은 좋은 동무였다.

김재련은 "그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고 오빠, 언니들이 객지로 나가면서 남겨놓은 '갈매기의 꿈' 같은 소설류도 읽었다"면서 "책을 보면서 논둑길을 가다 전봇대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했다.

시골 아이 김재련에게는 책이 많지는 않았다.

강릉에서 여고를 다니던 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김재련을 강릉의 서점에 데리고 가서 책을 사주곤 했다.

김재련은 "어릴 때 책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지금도 책이 많은 곳에 가면 설렘이 있다"고 했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대신에 헌법재판소 결정문, 대법원 판결문, 외국 논문을 많이 읽는다.

김재련은 "대법원판결을 읽어보면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 등 여러 견해를 검토해 고민하고 결론을 내린 것이어서 책을 볼 때처럼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마사회 탁구 감독 현정화(53)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탁구를 했다.

당시에 운동선수는 온전하게 학교 수업을 받지 못했기에 평소에 지적 갈망이 있었다.

그는 그걸 독서로 채웠다.

그는 "선수 시절 소설과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면서 "내 감정을 통제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독서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현정화는 스포츠에서 지적 능력은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탁구는 기술보다는 경기 운용 능력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했다.

그는 "선수 중에는 기술이 좋은 사람이 있고, 기술은 부족하지만 두뇌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결과적으로는 두뇌게임 하는 선수가 이긴다"고 말했다.

[삶-특집]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니
전 민노당 대표 권영길(81)은 고등학교 시절 책을 읽기 위해 학교 도서관의 책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사서를 도와주는 일인데,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어서 자원했다.

권영길은 이 일을 하면서 거의 독학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했다.

그는 "당시 도서관에는 사회과학책이 많았다"면서 "사회주의 비판 서적을 읽으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영길은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읽기를 계속했다.

고등학교 시절, 기자 시절, 파리특파원 시절에도 독서 모임을 조직했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77)도 9년의 수감생활과 12년의 도피 생활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그는 앨빈 토플러의 저서 등 과학이나 기술 관련 책에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운동가 하종강(68)은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반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거의 생활로 만들었고, 고전 평론가 고미숙(63)은 양자역학 등 과학의 분야로 독서의 세계를 넓혔다.

탈북 국회의원 태영호(58), 전태일 여동생 전순옥(69)도 어린 시절부터 읽는 것을 좋아했다.

국민의사 이시형(78)은 저서가 110권이나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