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올해 두 번째 금융통화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개월 만에 동결해서 그런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가 안정’보다 ‘경기 부양’을 우선시했다는 평가 속에 일부에서는 “현 정부가 제2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표방한 만큼 이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라며 포퓰리즘적으로 보는 비판도 있어 눈길이 간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포퓰리즘적 조치인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이번 금리 동결 조치를 보면 포퓰리즘적 비판 시각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작년 4분기 성장률이 -0.4%로 역성장했는데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올랐다. 두 목표를 동시에 중시해야 할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에서 어느 한쪽(경기 부양)을 강조하면 뒷전으로 물러나는 다른 쪽(물가 안정)에선 정도가 지나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퓰리즘적 비판 시각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특정국이 금리 동결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부진한 수출과 경기를 살리려면 해당국의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M-L)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외화 표시 수출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 통화 표시 수입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것이 최소한 ‘1’을 넘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M-L 계수의 시계열 자료는 이미 20년 전에 ‘1’ 밑으로 떨어졌고 해가 지날수록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의 수출입 구조가 환율과 같은 가격 경쟁력보다 기술, 품질, 디자인과 같은 비가격 경쟁력에 의해 좌우돼 왔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반도체, 자동차 등과 같은 주력 수출제품일수록 더 그렇다.

오히려 현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의식했다는 비판은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총수요 항목별 성장 기여도에서 70% 가깝게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가계부채 부담으로 제약돼 온 것이 경기 부진의 주요인이다. 이번 금리 동결로 가계부채 부담이 줄어들면 민간소비가 활성화돼 경기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 부담만 없다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층별 소득에서 K자형 구조가 심해진 여건에서 소비성향이 높은 BOP 계층이 가계부채 부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BOP 계층이란 ‘Bottom of Pyramid’의 첫 글자를 딴 용어로 인구 피라미드 구조상 밑바닥에 있는 취약계층을 말한다.

수출이 살아나야 경기 부양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1월 말 나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성장률을 보면 미국은 작년 10월 전망 대비 1.0%에서 1.4%로, 중국은 4.4%에서 5.2%로 상향 조정됐는데도 한국은 2.0%에서 1.7%로 하향 조정됐다. 조로화 문제에 봉착한 수출 여건에서는 내수를 살리는 것이 경기 부양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이번 금리 동결이 포퓰리즘적 조치라는 비판을 불식하려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어빙 피셔의 통화 가치를 감안한 자금이동이론에서 보면 원·달러 환율은 적정선인 1235원보다 훨씬 높다. 금리차와 환차익 측면에서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인 상황에서 금리 동결로 환율이 더 오르면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수입물가 상승 간에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환율 안정을 위해 이번에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는 방안은 한·미 간 금리차 축소와 같은 ‘가격 조정’과 외화 수급과 같은 ‘수량 조절’이 있다. 전자에 의한 환율 안정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시장경제가 잘 작동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따른다.

국내 외환시장은 외국인이 강한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불균형이 심한 상태다. 최근 한국 경제 상황과 비슷하던 1980년대 초 불균형 이론이 태동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균형점에서 이탈했을 때 종전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에 의해 이 점으로 수렴한다고 봤다. 하지만 불균형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이 무너져 균형점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고 본다.

불균형 여건에서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을 통해 미국과의 금리차를 축소하는 것보다 외화 수급 조절이 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번 금리 동결 조치에 포퓰리즘적 비판 시각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한은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70% 이상 과도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는지 △국민연금 등의 해외 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