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해안에서 난민들을 실은 배가 침몰해 최소 59명이 숨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밀입국 브로커를 함께 비난했다.

27일 로이터통신과 영국 매체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해안 인근에서 난민들을 실은 목조 범선이 침몰해 최소 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20명은 미성년자였다. 이 범선에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온 난민들이 최소 140명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200명 이상이 탑승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존자 81명 중 20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침몰한 배는 22일 튀르키예의 에게 해 연안에서 출발해 그리스 남부 바다를 거쳐 이탈리아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이탈리아 연안까지 다다르는 데엔 성공했지만 암초가 문제였다. 배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던 탓에 암초에 부딪치자마자 둘로 쪼개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 시간도 없이 배가 가라앉았다. 참사에 이탈리아 당국은 해안경비대, 소방관, 경찰 등을 현장에 급파했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도시인 쿠트로의 안토니오 세라소 시장은 “바다에서 계속해서 시신을 발견하고 있다”며 “난파선의 잔해가 해안 200~300m에 걸쳐 널려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 해안에 난민들이 상륙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비극은 처음이다”란 말도 덧붙였다. 튀르키예 국영통신사인 안사통신에 다르면 튀르키예 당국은 이 선박을 통한 밀입국을 주선한 브로커 1명을 인신매매 혐의로 구금했다.


난민을 실은 유럽행 배가 침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지중해 중부 해역에서 난민 선박 사고로 사망하거나 숨진 인원은 2만333명에 달한다. 이탈리아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 해상 경로다. 지난해 선박을 통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들의 수만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 극우 정부는 해상 구조를 하는 자선 단체에 최대 5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난민들의 해상 입국을 막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 건 막지 않지만 입항은 거부하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아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애도의 뜻을 드러내면서도 밀입국 브로커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멜로니 총리는 “‘인신매매범’에 의한 사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악천후 일기예보에서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태우고 길이가 20m에 불과한 배를 출항시키는 건 범죄”라고 말했다. 난민들의 유럽행을 주선한 밀입국 브로커를 인신매매범으로 규정하면서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것이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도 “인신매매범에 의한 이주를 막기 위해 이를 통제할 구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럽연합(EU)을 비판했다.

국제사회도 애도와 함께 난민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필리포 그란디 UN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유럽연합(EU)에 “논쟁을 중단하고 더 많은 비극을 피하기 위한 공정하고 효과적이며 합의된 조치에 도달하라”고 주장했다. 우르줄라 판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무고한 이민자들의 생명을 잃은 건 비극”이라며 “유럽으로의 이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망명 규칙을 개혁하는 데에 우리의 노력을 2배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