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KT&G가 조만간 자사주 소각 등을 포함한 3개년 중장기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한다. 2020년 이후 3년 만이다. 1월 말 기업설명회에서 “자사주 소각이 주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감안하면 친(親)주주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라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행동주의 펀드 요구 점진적 수용 모드

KT&G 관계자는 6일 “2020년 발표한 ‘3개년 중장기 주주친화정책’ 이후의 주주환원계획에 대해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 해당 계획이 구체화하는 대로 시장과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T&G는 대략 2002년을 기점으로 20여 년 간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해왔다. 작년 말 기준으로도 15%를 보유 중이다. 통상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 후 즉각 소각하는 방식으로 주주가치를 끌어올린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등 선진국 증시에 상장된 회사들만 해도 자사주 소각이 배당보다 주가 상승에 효과적이라고 본다”며 “자사주 매입이 소각으로 이어질 때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KT와 함께 민영화된 공기업 3인방으로 불리는 KT&G는 선진형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이 개인 대주주의 취약한 지배력을 보완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다만, KT&G 사내 우호 지분이 11%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KT&G 경영진이 자사주를 외풍 방어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KT&G는 자사주 매입 후 이를 사내 기금·재단에 기부해왔다.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 15%(작년 9월 말 기준)를 포함해 KT&G가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만 3조원을 웃돈다.

사내 우호 지분 11% 확보한 KT&G

사내 우호 지분은 감사보고서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만 보고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KT&G장학재단, KT&G복지재단, 공영기업 사내근로복지기금, 담배인삼공제회사사내근로복지기금, KT&G사내복지기금, 우리사주 등의 지분율은 모두 5% 이하로 보고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들 기금·재단의 지분율을 합하면 약 1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감사보고서상 1대 주주로 기재돼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작년 9월 말 7.44%)을 웃도는 규모다.

KT&G의 재단·기금·조합 등 6개 사내 우호 지분이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넘어선 해는 2021년께로 추정된다. 2020년 말 감사보고서상 1대 주주로 기재돼 있는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1.52%였다. 2021년 말엔 8.51%로 줄었다. KT&G 측이 사내 우호 지분 11%에 대해 “최근 몇 년간 큰 폭의 변동 없이 오랫동안 꾸준히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한 데다 자사주 처분에 관한 공시가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1년 말에도 기금 등의 지분율은 11%였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KT&G 측은 자사주 처분을 통해 사내 우호 지분이 증가한 것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익법인인 KT&G복지재단(2003년 설립), KT&G장학재단(2008년) 등에 자사주 일부를 기부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영상의 이슈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인 칼 아이칸의 공세는 2006년에 있었다.

다만 증권가에선 공익법인인 재단도 KT&G 경영진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각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8년부터 복지재단을 이끌고 있는 민영진 이사장은 KT&G 대표(2010~2015년) 출신이다. 올해로 임기 6년째인 백복인 KT&G 사장은 장학재단 이사장을 함께 맡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과 사내기금은 의결권 행사 시 경영진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KT&G 경영진 VS 차석용 앞세운 FCP, 치열한 주총 대결 펼칠 듯

이달 말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와의 표 대결이 어떻게 결론 날 지 예측하기 힘든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KT&G는 현재 약 15%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도 3000억원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할 예정이다. 경우에 따라 15% 이상의 지분을 ‘백기사’ 동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KT&G 경영진이 외국계 패시브 펀드와도 소통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안다”며 “인삼공사 분리 등 11개 주주제안서를 제출한 플래시라이트캐피탈매니지먼트(FCP)측이 외국계 주주와 더 가깝다고 볼 수는 있지만 현 경영진이 글로벌 전자담배 시장에서 필립모리스에 이어 2위를 넘보는 등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주요 주주들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법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KT&G만 해도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지 않음으로써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내 우호 지분율을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상헌 애널리스트는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등 본래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자사주도 신주 발행에 준하는 정도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T&G, 포스코와 함께 ‘민영화 3인방’으로 불리는 KT도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 및 현대모비스와 자사주를 맞교환, 7.7%의 우호 지분을 확보했다. 같은 해 1월엔 신한은행과 동일한 거래를 통해 우호 지분 5.47%를 마련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