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3거래일 만에 하락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과 미국의 넉넉한 원유 재고가 유가를 끌어내렸다. ‘기업들의 투자 증가세’와 ‘러시아의 원유 공급 중단 경고’라는 유가 상승 요인이 무색해졌다.

WTI 가격 0.84% 하락…美 금리 인상 우려 여파 [오늘의 유가 동향]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4월물)의 배럴당 가격은 전장보다 0.84%(0.64달러) 하락한 75.6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3일과 24일 연이어 가격이 오른 뒤 이날 떨어졌다. WTI 가격은 13일 80달러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75달러선으로 가격이 다소 떨어진 상태다. 유럽 유가 기준으로 쓰이는 브렌트유의 선물(5월물) 가격은 이날 전장 대비 0.94%(0.78달러) 하락한 82.04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날 나온 기업 투자 지표에는 유가 하락과 상승 신호가 공존했다. 이날 미 상무부는 1월 내구재 주문이 전월 대비 4.5% 감소한 2723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추정 감소치(3.6%), 인베스팅닷컴 추정 감소치(4%)를 상회했다. 내구재는 기업들이 3년 이상 사용하는 제품이다. 이 내구재의 주문 추이는 미국 제조업계의 장기 사업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꼽힌다.

시장은 내구재 주문 감소폭뿐 아니라 그 이면의 통계에도 주목했다. 항공기를 제외한 비국방 내구재 주문은 전월 대비 오히려 0.8% 증가했다. 보잉의 여객기 발주량 급감이 통계에 착시효과를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보잉은 5년 만에 최대 규모인 항공기 약 250대의 주문을 수주했다. 이 항공기 수주분이 급감한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미국 제조업계가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FWD본즈의 크리스토퍼 루프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새 장비에 대한 사업 주문은 경제의 미래에 거는 투자의 핵심 지표”라며 “이번 내구재 지표는 연초 기업들이 더 많은 주문을 받고 있다는 좋은 소식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징후는 긍정적이었지만 Fed 측 인사의 발언이 유가 상승을 억제했다. 이날 필립 제퍼슨 미 Fed 이사는 하버드대 강연에서 미국의 서비스 부문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뚜렷하게 높다”며 “물가상승률을 다시 2%로 낮추는 게 쉬울 것이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키울 만한 발언이었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넉넉하다는 점도 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미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 11~17일 미국의 원유 비축량은 전주 대비 760만배럴 늘어 2021년 5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9주 연속 증가다. 밥 요거 미즈호 애널리스트는 “이번 주에도 넉넉한 재고량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정보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FX프로의 알렉스 쿱시케비치 애널리스트는 “상업용 원유의 재고가 (지금보다) 더 높았던 때는 2016~2017년 공급 과잉기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때 뿐”이라며 “지금의 원유 공급량은 전년 동기보다 15.1% 늘어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다음 달부터 서부 지역의 석유 수출량은 최대 25% 줄이기로 한 가운데 최근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을 통한 폴란드 석유 공급을 차단했지만 시장은 이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이 EU, 미국 등의 느슨한 제재로 인해 최근 몇 달 간 예상치를 웃돌았다”고 짚었다. ING는 “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에서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의 공급 중단에 대한 우려가 무색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