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금리 때리는 정부, 왜 '월급쟁이 증세'엔 말이 없나
“아무런 혁신 없이 떼돈을 번다.” “이자 장사로 돈 잔치를 벌인다.”

정부가 지난 몇 달간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은행을 향해 쏟아낸 비난이다. 글로벌 금리 상승을 틈타 손쉽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보너스 대박을 터뜨린 은행들은 유구무언이다. 인플레이션이 실질 소득을 삭감하고, 고금리가 가처분 소득을 한 번 더 때리니 고통받는 국민들 입장에선 정부의 질타가 반갑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만 보면 정부라고 인플레이션에 무임승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고물가 고임금 바람에 편승해 직장인들 지갑을 사정없이 털고 있다. 지난 1월 근로소득세는 1년 전보다 2000억원 더 걷혔다. 경기 악화와 부동산 거래 위축으로 전체 국세 수입이 전월 대비 6조8000억원 줄어들었는데도 그렇다. 명목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인플레 증세’가 이뤄진 덕분이다. 2000억원의 초과 세수에는 말 많은 은행원들의 성과급 세금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시쳇말로 은행들의 고금리 횡재에 정부도 빨대를 꽂은 것이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징수액은 전년보다 14%나 늘어났다. 취업자가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2021년부터 본격화한 임금 상승이 결정적이었다. 임금 인상 폭이 크고 평균연봉 1억원 이상인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서 노다지가 쏟아졌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도 지난해보다 4.6% 늘어난 60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는 1%대의 빈약한 성장률과 대규모 무역적자에 시달리는데 정부만 가만히 앉아서 증세 효과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에 퍼붓는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혁신 없이 초과 세수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는 논리로만 본다면 소득 증가에 따른 세수 확대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통계를 보면 정부가 직장인 유리 지갑만 집중적으로 털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2022년 총국세는 395조9000억원으로 2012년(203조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법인세(45조9000억원→103조6000억원)도 비슷한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근로소득세는 19조6000억원에서 57조4000억원으로 거의 세 배로 불어났다. 어떤 구간을 끊어서 들여다봐도 근로소득세의 ‘나 홀로 급증’은 확연하다.

직장인 세금이 경제 성장 경로를 따라가는 국세의 자연적 증가분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 밝은 기재부 관료들이 몰랐을 리 없다. 이들이 지난 14년간 물가와 명목임금 상승을 외면하고 소득세 과표 조정을 기피한 것은 다분히 고의적일 뿐만 아니라 납세자 입장에선 악의적이기도 하다. 마침내, 윤석열 정부가 과표구간 조정을 통해 올해 과표 8800만원 이하 소득에 대해 약간의 감세 조치를 취했지만, 정작 줄어드는 세수는 2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명목임금 상승률에 비춰볼 때 말 없는 월급쟁이들을 무시하는 수준의 성의 표시다. 소득 역진성이 강한 주세도 고물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1월 세수는 1년 전보다 1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소비자물가를 추종하는 맥주 탁주의 주세가 자동으로 오른 데 따른 것이다. 물가가 높을수록 정부가 소비자 지갑을 털어가는 구조다. 그럼에도 정부가 물가를 잡는다며 제품가 인상을 말리고 있으니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본인 수입은 챙기면서 재료비·물류비 상승에 시달리는 주류업체의 어려운 사정은 알 바 아니라는 것인가.

정부는 이제라도 세목 간 징수 구조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물가 수준에 맞게 소득세 과표구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많은 언론이 지난 1월 세수 결손을 우려하고 있지만, 실질 임금과 소득 감소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주머니가 더 걱정스럽다. 가계에서 세금 이자 등으로 나가는 비소비지출 비중이 사상 최고치를 찍은 상황이다. 은행 팔을 비틀어 이자를 깎아주라고 하면서 왜 세금은 줄여주지 않는 것인가. 미국 캐나다 스위스처럼 물가를 감안해 매년 과표를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본다. 가뜩이나 모자라는 재정에 돈 쓸 곳이 널렸는데 어떻게 세수를 줄이느냐고 반문하려면 응당 납세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재정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다. 재정준칙 법제화에 협조하지 않는 야당만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 세정 준칙을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