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회'는 광복후 행적 이유로,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수형기록 없어

제주지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서훈 확대를 위한 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항일독립운동 인물 505명 중 40%만 서훈…"제 평가 못받아"
1일 제주 향토사학자 김찬흡 선생이 2005년 발간한 '제주항일인사실기'에 의하면 도내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한 인물은 505명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서훈을 받은 도내 독립유공자는 201명으로 39.8%에 불과하다.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은 대부분 후손에 의해 이뤄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상의 행적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으며 서훈 신청 의지도 약해져 독립운동 공적 발굴과 서훈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과 제주 특유의 독립운동 성격으로 서훈에서 탈락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제주 항일운동의 중심적 비밀결사 단체인 '신인회'를 조직해 활동한 송종현·김택수·한상호 선생 등은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25년 3월 제주청년회와 제주청년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신인회는 제주 항일운동의 중심적 비밀결사대다.

사회주의 노동자·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또 여성이 주도한 최대 규모의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끌었던 김계석·고차동(고순효) 해녀도 2018년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당시 수형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서훈을 받지 못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1932년 구좌, 우도, 성산 등 제주 동부지역 해녀들이 일제의 식민지 경제 수탈정책에 항거해 벌인 국내 최대 여성 항일운동으로 꼽힌다.

연인원 1만7천여 명이 참가했다.

제주 민족종교인 '무극대도' 사건 역시 일제강점기 유사종교 사건으로만 치부돼 관련 인물 23명에 대한 서훈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1936년 제주에서 도주 강승태가 조선 독립을 주장하는 포교 활동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은 사건이다.

당시 제주에서 무극대도 신자 3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 중 67명이 광주로 이송됐고, 이듬해 8월 23명이 기소됐다.

제주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무극대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분들의 판결문을 보면 죄명이 천황에 대한 불경죄 등이다"며 "제주민족종교는 독립을 목표로 활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단체는 무극대도 사건 관련 인물 23명 중 18명에 대해 재차 서훈을 신청할 예정이다.

도내 독립유공자 201명을 훈격별로 보면 애국장 25명, 애족장 95명, 건국포장 28명, 대통령 표창 53명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