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재테크로 본 현대사 다룬 특별전시 3일 개막
'매미처럼 후회 말고 개미처럼 저축하자' 표어 등 자료 230건 선보여
금고에 넣고 계주 찾아 삼만리…불임 수술도 감내한 '목돈의 꿈'(종합)
1963년 5월 생후 2개월 된 막내아들을 업고 누군가에게 끌려 나간 채 실종됐다던 30대 여성이 멀쩡히 돌아왔다.

닷새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경찰 조사 결과 친척 집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계주였던 그가 물어넣어야 할 돈이 불어나자 벌인 일종의 '유괴 연극'이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돈을 모아 융통한 '계'(契)는 순번에 따라 내가 낸 돈보다 더 많은 '목돈'을 만들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지만, 이처럼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돈을 모으고, 더 많이 불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개인과 가계의 자산 축적 역사를 정리한 특별전 '목돈의 꿈: 재테크로 본 한국 현대사'를 3일부터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다고 2일 밝혔다.

복권부터 저축, 부동산, 주식 등 다양한 재테크 방식을 230건의 자료로 쉽게 풀어낸 전시다.

전시는 근대식 금융기관이 도입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보여주며 시작한다.

금고에 넣고 계주 찾아 삼만리…불임 수술도 감내한 '목돈의 꿈'(종합)
일제강점기 때 쓰인 무게 400㎏의 금고, 한 숟가락씩 쌀을 덜어내 보관하던 절미통, 실탄 박스로 만든 개인 금고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상부상조의 삶을 보여주는 계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도 엿볼 수 있다.

일확천금의 꿈을 상징하는 복권을 다룬 부분도 흥미롭다.

올림픽 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복권부터 공공주택 기금을 조달하기 위한 주택복권, 오늘날의 로또 등이 전시된다.

전시는 광복, 전쟁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나라 경제를 뒷받침해 온 역사도 흥미롭게 다룬다.

1949년 조선식산은행(현재 한국산업은행)에서 복권 형태로 발행한 '건국기념예금증서'는 해방 후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고 연평균 100%가 넘는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내놓은 독특한 상품이다.

저축과 복권을 결합한 '복운예금' 1등 당첨자는 당시 돈으로 1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 시절 고소득 군으로 꼽히던 목수의 월급이 평균 12.1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688년 치 임금이다.

1970년대 정부에서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발행한 표어에는 붉은색 글씨로 '매미처럼 후회 말고 개미처럼 저축하자'고 적혀 있어 사뭇 비장한 느낌을 자아낸다.

개인 자산의 주요한 부분, 즉 '내 집' 마련 이야기도 전시의 주요한 부분이다.

전시를 기획한 함영훈 학예연구사는 이날 설명회에서 "부동산은 전통적으로 돈을 불리는 수단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며 "1970년대 가점 요건 중 하나였던 불임 수술(정관 수술)을 받고 서울 반포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연 등도 인터뷰 영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고에 넣고 계주 찾아 삼만리…불임 수술도 감내한 '목돈의 꿈'(종합)
3천400여 세대의 아파트 단지 분양 안내서, 임대차계약서, 주택담보대출 관련 자료와 함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 제도인 전세 제도도 짚는다.

전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과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는 주식, 채권 이야기로 이어진다.

관람객들은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개소 상황부터 1970년대 주식경매 입찰 당시 사용했던 함, 증권 거래소 직원이 사용한 호가표 등을 주식거래 방식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각종 경조금을 현금 대신 소액 채권으로 내자는 '범국민 운동' 포스터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10억원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고 경제 상황에 따라 수익률 변화가 달라지는 게임, 직접 부동산 계약을 체결해보는 체험 활동 등을 더해 관람객의 흥미를 이끈다.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에서 경제적 성과를 이루기까지 국민 개개인과 가정에서 어떻게 노력했는지 역사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금고에 넣고 계주 찾아 삼만리…불임 수술도 감내한 '목돈의 꿈'(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