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자유정부의 선택…'보이는 주먹' vs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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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잡으려 업계 옥죄는 정부
여론 의식 공정위·국세청 동원
단기 승리로 거리의 박수 받겠지만
인위적 '가격개입' 부작용도 많아
"묘한 기름값" MB정부 총공세
석 달간 유가 100원 내렸을 뿐
허원순 논설위원
여론 의식 공정위·국세청 동원
단기 승리로 거리의 박수 받겠지만
인위적 '가격개입' 부작용도 많아
"묘한 기름값" MB정부 총공세
석 달간 유가 100원 내렸을 뿐
허원순 논설위원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발언록’의 앞쪽에 실릴 만한 말이다. 국제 유가가 내렸는데 국내 기름값은 왜 그만큼 내리지 않느냐는 당시 대통령 언급에 공정거래위원장과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산업부 장관 등이 일제히 정유소와 주유소 때리기에 나섰다. 성과는 어떠했나. 석 달가량 기름값이 100원 정도 내린 게 다였다. 비싼 유가는 50% 넘는 세금 탓이 큰데, 정유사 마진 타령을 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구겨진 것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라는 평판이었다.
12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세금 좀 올랐다고 주류 가격 올리나”라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하이트진로가 먼저 “당분간 소주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고, 오비맥주 등도 뒤따랐다. ‘당분간’이 과연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기업들도 따를 것이다. 속으로 꿍꿍 앓을지언정 ‘동향파악, 실태조사’ 운운하는 국세청에 주류업계가 맞서기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워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식품산업협회의 접촉에서도 바로 정부가 원하는 답, 가격 동결이 나오고 있다.
당국자들은 “그래도 말이야, 아직은 우리가 나서면…”이라며 우쭐해할까. 고물가 불황에 오르는 가격이 부담되고 겁나는 게 술값과 식품뿐이겠나. 오르는 수입 원자재든 세금이든 조금 멀리 보며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바라마지 않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다. 가격을 올리는 공급자에 섭섭함과 야속함 이상의 감정까지 생기는 상황에 정부가 잽싸게 올라탄 것이다. 이 정부 일은 아니지만, 산업구조조정 등의 정책 결과인 과점체제에서 큰 수익을 낸 은행·통신사에 대한 정부의 융단폭격도 같은 맥락이다.
현상만 보고 단기적으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남는 장사를 할지 모른다. 어떻게든 물가를 잡는 정부로 보이면 지지도가 오를 수 있고, 내년 총선에도 잘 대비하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여론에 올라탄 이런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복합 위기라는 지금 경제난의 큰 요인은 해외발 공급망 이상이다. 에너지·식량을 비롯해 원자재값이 올랐고 높은 최저임금에 따라 인건비도 고공 행진이다. 공급 요인에 주목해 보면 썩 훌륭한 물가 대책은 못 된다.
‘세금은 조금 올렸는데 출고 가격은 그보다 더 올리는 게 말이 되나’는 식으로 윽박지르면, 정부만 필요한 돈을 챙기되 기업은 손해 보든지 말든지 알아서 버티라는 것인가. 사정을 알면서도 다수에게 유리해진다는 심산이라면 더 고약하다. 더구나 국세청이 ‘소줏값 인상 요인은 점검했지만 인상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면 참으로 당당하지 못하다. 정부가 원가 계산을 해보겠다면, 1시간에 100만원씩 받는 유명 로펌의 수임료는 어떤가. 매일 수백 명에게 회당 2만원씩의 코로나 백신 주사로 과외 수익을 얻은 의사의 주사 놓기 원가는 얼마인가. ‘K방역에 대한 입막음용 뇌물’이었기에 의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세간의 썰렁한 평가 그대로여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나.
고물가에 대한 정부 고충은 이해된다. 그래도 가격 인상 담합, 사재기 단속 등에 주력하면서 유통망 점검과 물류산업의 규제 혁파를 꾀하는 게 정공법이다. 공정거래법이나 물가안정법도 시장 자율을 존중하면서 간섭·개입은 최소한으로 하는 게 좋다. 그런데도 은행은 아예 ‘공공재’라고 규정하더니 7년 만에 금리 담합을 들여다보고, 통신사도 공정위가 현장 조사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다. 경제부처가 작정하고 나섰으니, 그다음은 검경 동원인가.
권력기관의 근육질 행동보다 수요공급의 흐름을 세심히 살피는 게 먼저여야 한다. ‘보이는 주먹’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잘 살피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당국자 눈에는 거리의 박수가 먼저 보이겠지만 뒤에서 말없이 응시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원래부터 정부가 판정하는 ‘적정 이윤’이나 ‘계산 가능한 원가’라는 건 없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데서 가격이 형성되니 언제나 이 시스템을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
‘자유·시장’의 기치를 내걸어놓고 가격 간섭의 유혹에 쉽게 빠지면 좌파의 막무가내식 횡재세 도입은 무슨 명분으로 막을 텐가. 근본 문제는 자칭 우파나 노골적 좌파나 조금 다급해지거나 선거라도 닥치면 너나없이 간섭과 규제의 원초적 본능에 빠진다는 점이다. 철학 빈곤과 가치 부재의 한국 정치의 고질이다.
12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세금 좀 올랐다고 주류 가격 올리나”라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하이트진로가 먼저 “당분간 소주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고, 오비맥주 등도 뒤따랐다. ‘당분간’이 과연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기업들도 따를 것이다. 속으로 꿍꿍 앓을지언정 ‘동향파악, 실태조사’ 운운하는 국세청에 주류업계가 맞서기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워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식품산업협회의 접촉에서도 바로 정부가 원하는 답, 가격 동결이 나오고 있다.
당국자들은 “그래도 말이야, 아직은 우리가 나서면…”이라며 우쭐해할까. 고물가 불황에 오르는 가격이 부담되고 겁나는 게 술값과 식품뿐이겠나. 오르는 수입 원자재든 세금이든 조금 멀리 보며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바라마지 않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다. 가격을 올리는 공급자에 섭섭함과 야속함 이상의 감정까지 생기는 상황에 정부가 잽싸게 올라탄 것이다. 이 정부 일은 아니지만, 산업구조조정 등의 정책 결과인 과점체제에서 큰 수익을 낸 은행·통신사에 대한 정부의 융단폭격도 같은 맥락이다.
현상만 보고 단기적으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남는 장사를 할지 모른다. 어떻게든 물가를 잡는 정부로 보이면 지지도가 오를 수 있고, 내년 총선에도 잘 대비하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여론에 올라탄 이런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복합 위기라는 지금 경제난의 큰 요인은 해외발 공급망 이상이다. 에너지·식량을 비롯해 원자재값이 올랐고 높은 최저임금에 따라 인건비도 고공 행진이다. 공급 요인에 주목해 보면 썩 훌륭한 물가 대책은 못 된다.
‘세금은 조금 올렸는데 출고 가격은 그보다 더 올리는 게 말이 되나’는 식으로 윽박지르면, 정부만 필요한 돈을 챙기되 기업은 손해 보든지 말든지 알아서 버티라는 것인가. 사정을 알면서도 다수에게 유리해진다는 심산이라면 더 고약하다. 더구나 국세청이 ‘소줏값 인상 요인은 점검했지만 인상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면 참으로 당당하지 못하다. 정부가 원가 계산을 해보겠다면, 1시간에 100만원씩 받는 유명 로펌의 수임료는 어떤가. 매일 수백 명에게 회당 2만원씩의 코로나 백신 주사로 과외 수익을 얻은 의사의 주사 놓기 원가는 얼마인가. ‘K방역에 대한 입막음용 뇌물’이었기에 의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세간의 썰렁한 평가 그대로여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나.
고물가에 대한 정부 고충은 이해된다. 그래도 가격 인상 담합, 사재기 단속 등에 주력하면서 유통망 점검과 물류산업의 규제 혁파를 꾀하는 게 정공법이다. 공정거래법이나 물가안정법도 시장 자율을 존중하면서 간섭·개입은 최소한으로 하는 게 좋다. 그런데도 은행은 아예 ‘공공재’라고 규정하더니 7년 만에 금리 담합을 들여다보고, 통신사도 공정위가 현장 조사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다. 경제부처가 작정하고 나섰으니, 그다음은 검경 동원인가.
권력기관의 근육질 행동보다 수요공급의 흐름을 세심히 살피는 게 먼저여야 한다. ‘보이는 주먹’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잘 살피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당국자 눈에는 거리의 박수가 먼저 보이겠지만 뒤에서 말없이 응시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원래부터 정부가 판정하는 ‘적정 이윤’이나 ‘계산 가능한 원가’라는 건 없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데서 가격이 형성되니 언제나 이 시스템을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
‘자유·시장’의 기치를 내걸어놓고 가격 간섭의 유혹에 쉽게 빠지면 좌파의 막무가내식 횡재세 도입은 무슨 명분으로 막을 텐가. 근본 문제는 자칭 우파나 노골적 좌파나 조금 다급해지거나 선거라도 닥치면 너나없이 간섭과 규제의 원초적 본능에 빠진다는 점이다. 철학 빈곤과 가치 부재의 한국 정치의 고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