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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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제4 이동통신사’입니다. 기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아닌 새로운 기업을 끌어들여 3개 회사에서 4개 회사 경쟁 체제로 시장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제4이동통신사로 주파수 할당, 경쟁 촉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제4 이동통신사가 화두로 떠오른 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첫째는 작년 12월 KT와 LG유플러스에 할당된 5세대(5G)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가 취소된 일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5G를 위해 사용 중인 주파수 대역은 3.5㎓와 28㎓ 두 가지입니다. 통신 3사는 3.5㎓를 이용해 5G 전국망을 구축했지만 28㎓는 당초 의무 구축 계획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28㎓를 쓰면 주파수 대역이 넓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직진성이 강해 3.5㎓ 대비 훨씬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합니다.

정부가 통신사에 빌려줬던 주파수를 회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작년 12월 주파수 할당 취소를 확정하면서 정부는 신규 이동통신사 유치에 대한 계획도 공식화했습니다. 회수한 주파수 대역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사업자에게만 할당하고 각종 혜택도 주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지난달 15일 비상 경제·민생 회의에서 “통신과 금융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상태를 유지하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말부터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상반기 중 대책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28㎓ 주파수 할당과 통신 시장 경쟁 촉진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제4 이동통신사 탄생으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셈이죠.

통신사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까지 검토

지난 2일 과기정통부가 주최한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 마련을 위한 공개 토론회 역시 신규 사업자 진입이 화두였습니다.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자리였지만 박윤규 2차관의 발언에서 정부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박 차관은 인사말에서 “혁신적인 사업자가 나와 경쟁이 활발해지길 기대한다”며 “단순 통신 사업에 그치지 않고 통신과 금융, 유통, 모빌리티 등 다양한 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입에 방해되는 요소를 찾아 제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통신사업자가 아닌 다른 영역의 기업이 새로 시장에 진입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책 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이날 발표 내용도 신규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국내 통신 3사의 이동통신 서비스 매출 점유율이 2021년 97.9% 수준으로 과점 상황일뿐더러, 1위 사업자의 점유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발표를 맡은 KISDI의 김민철 본부장은 “국내 통신 시장의 경쟁상황이 개선돼 왔으나 사업자 간 경쟁 압력보다는 규제정책의 영향이 더 컸다”며 “시장구조와 요금 수준 등의 측면에서 미흡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어 프랑스 프리모바일과 일본 라쿠텐의 신규 진입을 소개하면서 그 결과 1위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 감소, 시장 구조 개선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신규 통신사 진입이 시장 경쟁 촉진으로 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기 위한 제도 개선 사항의 하나로 외국인 지분 제한(최대 49%) 완화를 들기도 했습니다.

"신규 사업자보다 시장구조 개선 먼저"

하지만 발표 이후 이어진 전문가 토론에선 신규 사업자 진입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남재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쟁 촉진에 가장 좋은 것은 시장구조 개선”이라면서도 “지금 신규 사업자가 통신 시장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지 잘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새로 진출하려는 사업자가 없다면 초과 이윤이 없기 때문인지, 규제 등 시장 진입장벽 때문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신사가 한두 개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다”며 “현실적으로는 통신사 진입 여부와 상관없이 규제 통한 경쟁 촉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든 복잡한 가격구조 등 산업 특성에 따른 경쟁 저해 요소가 여전히 통신 시장에 남아있는 만큼 이런 것들을 해소하면 경쟁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도 “사업자 수는 중요하지 않다”며 “암묵적으로 조율되는 시장이라면 기업이 하나 늘어난다고 경쟁이 촉진되지 않는다”고 단언했습니다. 기업이 파격적이고 구별되는 서비스·상품·사업전략을 내려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제도나 시장 상황이 이런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규 사업자가 나오더라도 기존 사업자와 똑같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통신기업은 치열한 네트워크 경쟁을 벌여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빠른 네트워크를 위해 세계 최초 경쟁을 벌였고 그 결과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그는 “통신은 전 세계 어디든 과점시장”이라며 “시장이 성숙하고 사업자가 한정되면 가격과 서비스가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요금이나 서비스의 실질적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조금 부족하다”면서도 “경쟁이 미흡한 시장이라는 진단은 매년 나왔지만, 그동안 정부가 정책적으로 잘 대응했나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4 이동통신사, 만능열쇠 아니다

통신 시장은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빌려 사업을 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매년 수조원씩 투자해야 하는 대규모 장치산업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장도 한정적입니다. 국내 휴대폰 회선은 작년 말 기준 5549만9895회선입니다. 2019년 12월(5619만회선)보다 오히려 줄었죠. 통신업 특성상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도 어렵습니다.

한정된 시장에서 돈을 벌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요금을 올리거나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방법입니다. 요금 인상은 쉽지 않습니다. 매번 정부에서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요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부담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약정할인 비율이 20%에서 25%로 상향됐고 기본 요금제에 대한 요구도 이어졌습니다. 이번 정부도 ‘중간 요금제’ 등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고요. 3G에서 LTE, 다시 5G로 넘어가면서 요금 인상이 꾸준히 이뤄졌지만 무선 사업은 정체 상황입니다. 통신 3사 모두 IPTV, 인공지능, B2B 등 신사업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있습니다.

가입자 빼앗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통신사들은 번호 이동하는 고객에게 보조금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 경쟁사 가입자는 줄이고 내 가입자는 늘리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을 정부가 금지하면서 보조금 경쟁도 사그라들었습니다. 무선통신과 IPTV, 초고속 인터넷 등을 묶어 결합 할인을 받는 이용자도 늘었죠.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휴대폰을 한 번 사면 3~4년씩 쓰는 것도 경쟁에는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분명 통신 시장에 경쟁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통신 시장에 쌓인 문제가 제4 이동통신사 진입으로 한 번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상반기에 내놓을 경쟁 촉진 방안에 최선의 방안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