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 하이브 의장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 하이브 의장
하이브가 공개매수로 확보하려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지분이 목표치에 이르지 못하면서 양사가 이달 말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표심 잡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주주들을 향한 구애가 시작되면서 경영권 분쟁은 서로를 겨냥한 여론전으로까지 번졌다.

SM은 사내이사에 장철혁 SM 최고 재무 책임자(CFO), 김지원 SM 마케팅센터장, 최정민 SM 글로벌비즈니스센터장을 후보로 제안했고, 하이브는 이재상 하이브 아메리카 대표와 정진수 하이브 최고법률책임자(CLO), 이진화 하이브 경영기획실장을 추천했다.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SM 주주여야 한다. SM은 소액주주 비중이 유독 큰 기업으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SM 소액주주 비율은 무려 70.53%에 달했다. 결국 주주 표심이 어느 진영의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하이브는 이 전 총괄의 지분 14.8%를 사들였지만 공개매수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SM은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우군인 카카오가 지분 9.05%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전 총괄이 제기한 발행 금지 가처분이 인용되는 변수를 맞았다. 이에 주총까지 여론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하이브와 SM은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티스트와 팬들을 자극하는 감정적 대응이 오가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K팝이 글로벌 시장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현재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M이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는 아티스트 컴백 및 활동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 이목을 끌었다. SM은 하이브와 업계 최대 경쟁사임을 강조하며 부정적 측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팬들의 관심을 끈 대목은 "좋은 연습생도, 좋은 곡도, 좋은 안무가와 공연 기획도 모두 하이브가 SM에 가지는 지분율보다 더 높은 지분율을 가진 빅히트(방탄소년단 소속사), 어도어(뉴진스 소속사), 쏘스뮤직(르세라핌 소속사), 플레디스(세븐틴 소속사) 같은 산하 레이블에 먼저 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계방향) 그룹 방탄소년단, 르세라핌, 세븐틴, 뉴진스
(시계방향) 그룹 방탄소년단, 르세라핌, 세븐틴, 뉴진스
그렇다면 실제로 하이브가 SM을 인수할 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업계에서는 멀티 레이블 체제 하에서는 '차별적 대우'가 사실상 불가능할 거라 보는 시각이 많다. SM에 대해 현 어도어, 플레디스, KOZ엔터테인먼트와 같이 독자적인 프로듀싱 노선을 보장한다면 이른바 '본진'에서의 관여도가 크게 낮을 것이란 관측이다.

하이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부 파트에서는 레이블 간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독립성이 짙다. 구성원들끼리도 서로 다른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SM의 경우 타 레이블과 비교해 인력도 많기 때문에 더더욱 통합 관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불문율로 여겨지던 컴백 시기 조율 등은 불가피하겠지만, 이 또한 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닐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올해 1월만 해도 뉴진스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컴백했고, 뒤이어 2월 초에 세븐틴 부석순이 나왔다. 지난해 5월에도 르세라핌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이 모두 활동했다"면서 "활동 시기는 업계 전반에서 다른 회사의 컴백 팀을 고려해 짜는 사안이기 때문에 하이브에만 한정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시계방향) 그룹 NCT 127, 레드벨벳, NCT 드림, 에스파
(시계방향) 그룹 NCT 127, 레드벨벳, NCT 드림, 에스파
다만 관계자들은 SM 아티스트와 팬덤이 상처받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여론전 상황에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일례로 하이브는 우월적 지위를 강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여러 차례 SM 팬들을 자극했다. 이재상 사내이사 후보자는 SM과 하이브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기아-현대차, 불가리-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에 비교했고, 정진수 사내이사 후보자는 SM과 카카오 간 사업협력계약을 두고 을사늑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경영진 간에 오가는 발언일지라도 소속 아티스트 및 팬들이 동요할 수 있는 톤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SM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재계약을 앞둔 연차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수전의 향배가 재계약 여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그 가운데 SM 아티스트들은 똘똘 뭉쳐 서로 응원하고 있다. 지난 26일 개최된 에스파의 첫 단독 콘서트에는 그룹 동방신기 최강창민, 슈퍼주니어 이특·은혁, 소녀시대 태연, 샤이니 민호·키, 레드벨벳 슬기·웬디, 레이든, NCT 지성·해찬·런쥔·텐·샤오쥔·쿤 등이 대거 참석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소속사 막내의 첫 콘서트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현장에 모였다고 한다.

당시 공연을 본 30대 남성 팬은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에스파까지 응원 중이다. SM 팬덤은 '핑크 블러드(SM 음악과 콘텐츠에 피가 반응한다는 뜻으로, 아티스트와 팬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단어로 쓰인다)'라는 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모든 소속 팀들을 응원하는 문화도 있다. 팬들이 바라는 건 좋아하는 그룹을 오랫동안 보는 것"이라면서 "단순한 '쩐의 논리'로 서로를 찍어 내리기에 앞서 그간 쌓아온 K팝의 위상과 문화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