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기업이 없으면 나라경제도 없다
일본은 모든 면에서 한국에 뒤처졌다는 일본의 원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의 기고문이 일본 경제 잡지인 현대비즈니스에 실려 일본에 큰 충격을 줬다. 일본의 자랑이던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제조업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패션, 음식, J팝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등의 문화 산업에서도 한국에 완전히 뒤처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이 한국에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뒤처진 많은 요인 중 한 가지는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 상실을 들 수 있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 들어가는 일본 기업 수의 추이를 보면 1995년 세계 500대 기업에 141개사가 올라 세계 2위였지만 2010년 68개사로 반 이상 줄었고, 2022년엔 47개사로 감소했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침체 기간 100개에 가까운 일본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위상을 상실했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은 1995년 12개사에서 2010년 14개사, 2022년 16개사로 조금씩 늘고 있다.

일본 대기업 비중은 자국 내에서도 그리 높지 않다. 2014년 기업 규모별 고용 비중에 대해 국제비교를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미국은 250명 이상의 대기업이 전체 기업의 0.7%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고용자 중 54.6%를 고용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 250명 이상의 대기업은 기업 수에서 0.3%로 작고,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5%로 낮다.

일본 대기업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었을 때인 199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837달러였고, 미국은 3만6464달러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일본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잃었던 2018년 일본의 1인당 GDP는 거의 변화 없는 3만8674달러였지만, 미국은 5만5335달러로 1991년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이 기간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트인, 우버, 에어비앤비,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선 소프트뱅크와 라쿠텐 정도가 새롭게 출현해 성장했다. 일본과 미국 경제 성장의 차이는 새로운 대기업의 출현과 성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강점으로 강소기업을 드는 경우가 많지만, 그 기업들이 경제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는 주체는 될 수 없다. 한국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과 같은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한 반면 일본은 대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한국에 뒤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