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초 ‘노후 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을 공개한 이후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주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별법이 재건축 용적률 상한을 최대 500%까지 허용하기로 하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단지에선 ‘재건축 선회’를 놓고 내홍이 벌어지고 있다. 재건축을 준비 중인 단지에서도 특별법의 초점이 ‘광역 개발’에 맞춰져 있어 개별 단지의 사업 추진 속도가 오히려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14단지두산에선 이달 초 1기 신도시 특별법 발표 이후 일부 주민이 재건축 추진을 요구하며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추진 단지 20여 곳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서 리모델링하면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를 지었을 때보다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안양시 동안구 평촌 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주민 간 의견 충돌로 진통을 겪고 있다. 안양시 한 리모델링 추진 단지 관계자는 “주택 경기 침체로 작년부터 주민 동의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별법 발표 이후엔 동의서가 전혀 걷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이 필요한 단지도 많은데 정부가 재건축 관련 규제만 풀고 리모델링 제도 개선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법 시행으로 재건축 속도가 오히려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특별법 발표 당시 ‘체계적인 광역 개발’을 강조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광역 개발을 하려면 도로, 학교 등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손질이 필요해 완공까지 수십 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상당수 서울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사업장의 개발이 중도에 좌초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1기 신도시, 특별법 놓고 '고심'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재건축 연한을 채우고 사업 채비를 갖춘 단지부터 재건축에 속도를 낼 수 있게 지원해 달라는 입장이다. 성남시 분당구의 한 재건축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광역 개발을 한다는 이유로 정비계획 수립, 정비구역 지정 등이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주민들 사이에서 크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